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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부터 난리다. 지난 27일 방송된 장영란의 해피투게더 출연 내용이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네이버와 다음에서 '장영란 방송사고'로 실시간 검색에 올랐다.

자 여기서 스타트하자. 그게 거의 일주일이나 지나 왜 오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으니 데일리 서프라이즈를 필두로 한 매경, 한경, 중앙, 조선, 데일리안 등이 가만히 놔둘리 없다. 그것도 한번만 쓰면 타 회사에 밀리니까 제목만 바꿔서 내보낸다.

여기에는 그 영상을 제대로 본 사람도 없고 일단 한쪽에서 '방송사고'라고 하니까 그 텍스트 그대로 베껴쓴다. 일명 언론이라고 지칭되는 (검색어 따라잡기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 채) 곳에서 그런 식으로 '방송사고' 규정을 해버리니, 속사정 모르는 네티즌들은 또 그대로 믿고 장영란의 미니홈피에 가서 난도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스타뉴스가 담당 피디 인터뷰하면서 몇몇 언론사에서는 냉정하게 평가하는 글을 내보냈다.

그러나 냉정한 평가의 글은 한번이면 족하다. 다시 '방송사고' 운운하면서 긁어서 내보기를 시작한다.

영상을 보면 사실 문제될 것이 없다. 그 내용도 들어보면 저속한 비속어가 아니라 '보디'로 들린다. 또한 풀 영상은 경우에는 이에 대한 설명도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편집된 그 부분만 강조함으로서,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해줌으로써 장영란과 해피투게더 제작진만 이상한 꼴이 되어버렸다.

결국 출처 불분명한 검색 -> 트래픽에 목 맨 찌라시 언론들의 베끼기식 확대 생산은 또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만일 장영란의 이야기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지 않았다면 그보다 더한 비속어를 내뱉었어도 아마 관심조차 끌지 못했을꺼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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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배우 맹상열을 처음 본 것은 2006년 6월 미라클시어터에서 공연된 '해피투게더'에서였다. 도둑질을 하는 농촌총각 달구가 그의 역할이였다.


소극장에서 주조연이 누구냐고 따지는 것도 그렇지만 그래도 극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존재하는 법이다. 이런 측면에서 6월 해피투게더에서 맹상열은 분명 극의 중심인물은 아니였다.


연극이 중반부를 지나면서 전체 흐름의 일부분을 맹상열이 조절하는 것 같아 보이면서, 그의 위치가 빛나기 시작했다. (물론 연출가의 의도인지, 맹상열이 의도적으로 그러한 위치를 스스로 만들어냈는지는 모르겠다).


많은 연극을 보면서 '아트' 등의 인물 중심의 연극이외에 연극속에서 '인물' 자체를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미라클에서 그를 다시 보았다. 여전히 그는 조연이였지만 주연이였다.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 역할을 했다. 그가 꼭지를 바로 돌리면 물이 나왔고, 그가 다시 거꾸로 돌리면 물이 멈췄다. 인물이 중심이 아닌,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연극에서 그는 계속해서 특이하게 스스로 '인물'이 중심이 되는 형태를 만들어 갔다.


그렇다고 스토리 밖으로 튀어나가 버리거나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또 다른 이들을 빛나게 해주면서도 스스로 또한 빛났다.


이런 그의 연기가 마음에 들어 난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그가 빠진 해피투게더를 보고 '농촌총각 달구' 역을 맡은 조규준에게 무의식중으로 맹상열씨와 비교하는, 때문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냐는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사실 11월의 해피투게더에서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조규준이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맹상열의 극중 부피가 너무 커서 인상깊었던 탓이였다. 그리고 또다시 12월 뮤지컬 마이걸에서 만난 맹상열은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해졌다.


원래 나이답지 않게 (79년생으로 서울예대 04학번) 맡은 역에 흡수되어 있었다. 사실 그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하게된다. 80%의 웃음과 20%의 진지함을 말이다. 그리고 맹상열은 그것을 충분히 보여줬다.


그렇다고 그가 완벽한 배우라는 말은 아니다. 노래 부를 때 불안감도 느껴졌고, 극의 무게중심 이동도 어느 때는 너무 한쪽으로 휩쓸리게 만들기도 했다. 연극에서 안정된 모습이 뮤지컬에서 위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발 디딘지 몇 년 안된 20대 배우라는 점에서 이같은 부분은 걸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소소하다.


2006년 내가 대학로에서 얻어낸 가장 큰 수확은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아직은 어색하지만 친근한 배우, 조연이면서 주연의 역할을 해내는 맹상열이라는 배우를 찾아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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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공연시작 시간 10여분이 지나도록 뮤지컬이 시작 못하는 이유가 계속해서 들어오는 관객들 때문이라면 그 누구를 탓하기도 어렵다. 누군가의 소개 때문이든, 어느 프리뷰 기사를 읽고 왔든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주위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말하는 모습이 시끄럽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그들과 똑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1월 30일부터 대학로 사다리 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마이걸’ 공연장 모습이다. 여타 대학로 소극장에 비해서 크다고 느껴지는 그 공연장이 더 들어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득차 공연 전에 이미 ‘열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불이 꺼지고 세 명의 남자 배우가 한껏 흥을 돋우려고 노래와 춤을 선보이자, 부산했던 관객들은 그제서야 공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뮤지컬 ‘마이걸’은 결혼을 준비하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와 아내의 죽음을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며 딸과의 어색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그러면서 암을 숨기며 딸의 결혼식을 준비해가는 아버지의 사랑이 극의 주된 흐름이다. 여기에 절친한 친구를 떠나보내는 눈물 겨운 우정까지 보태진다.


사실 내용 자체가 신선한 것은 아니다. 부녀간의 갈등이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해결되는 모습, 매일 다투면서도 오랫동안 알고 지냈기에 서로에 대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친구와의 우정 등은 이미 여타 드라마나 연극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익숙해진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마이걸이 관객들의 끊임없는 박수와 호응을 얻는 이유는 웃음과 눈물의 적절한 배치,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과 기억에 남을 만한 음악 등을 꼽을 수 있다. 웃음과 눈물의 조화는 이미 연출을 맡은 김태린이 해피투게더나 미라클에서 충분히 검증해 보였고, 맹상열 등도 대학로 소극장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박수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냈던 배우들이라는 점에서 믿을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연 내용이 우리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이 관객들을 동화시키는 주된 요인이 아닐까 싶다.


관객 후기를 보면 대부분 공연을 보고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공연 자체를 연인끼리 혹은 친구끼리 보러간다는 후기보다는 아버지와 다시 한번 보고싶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한때는 집안의 중심이였지만 점점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그러면서도 자식을 위해 뭐든 해야 된다는 생각에 늘 사로잡혀 있는 평범한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뮤지컬 안에 녹아서 관객들에게 ‘내 이야기’라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한편으로 공연을 보면서 위태위태하다고 느낀 것은 배우들의 비중이다. 5명이 모두 주연일 수 있는 소극장 뮤지컬 특성상 주·조연을 따지는 것이 도리어 어색한 일일지 모르지만, 뮤지컬 ‘마이걸’은 극중 중심으로 이루는 우진과 딸 서연보다는 아버지와 학수가 흐름을 비중있게 이끌어 가다 못해 후반부서는 극의 무게가 한쪽으로 기운 느낌마저 들었다. 게다가 이정현씨의 경우 지난번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주연했던 ‘결혼’과는 달리 대사 처리가 불안했다. 전달력이 떨어졌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노래는 도리어 여타 배우들을 압도하는 면을 보였다. 학수역을 맡은 맹상열씨는 여전히 조연 아닌 조연을 맡았다. 조연이면서 배역을 조절하는 역할은 해피투게더와 미라클과 마찬가지로 천상 그가 맡아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했던 바가 아니라면 “아버지와 친구가 춤을 추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친구의 죽음에 대해 애통해하는 학수의 모습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의 많은 후기는 뮤지컬이 롱런하기 위해 참고해야 될 부분일 것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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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연극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불이 꺼졌다. 이야기속 이야기가 끝이 난 것이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야 하는데, 관객석에서 끊임없는 박수가 터졌다. 불이 켜지고 이야기는 계속 진행됐다. 그리고 배우들의 마지막 동작이 끝난 후 다시 끊임없는 박수가 터졌다. 일어서기 어려운 소극장이 아니였다면 기립박수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주 연극 해피투게더 공연 현장의 모습이다.


연극 내용은 어렵게 돈을 모아 이곳저곳에 기부해 온 치매 걸린 한 할머니의 집에 도둑이 들어와 아들 노릇을 하면서 벌어지는 엉뚱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10회 앵콜인 이번 공연은 지난 공연보다 확실히 웃음의 강도를 줄였다. 어쩌면 지난 공연과 같은 웃음을 기대했다가는 자칫 당황할 수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2명의 배우가 바뀐 상황에서도 흐름은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나 무게 중심을 메시지쪽으로 옮겼다는 연출가의 말은 그다지 신뢰를 얻긴 힘들 듯 싶다. 이미 여러차례 공연에서 보여준 웃음에 대한 기대감때문인지, 관객들은 배우들이 의도한대로 쉽게 이끌려 가지 않았다. 6월 공연에서 보여준 관객들의 훌쩍거림이 이번 공연에서 쉽게 들리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관련 글] 6월 해피투게더


사실 할머니가 혼절하는 장면, 그리고 이 때문에 두 도둑이 진실을 말하며 속죄하는 장면은 이 공연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씬이다. 그리고 연극을 마무리함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는 철저하게 '웃음에 대한 기대'에서 무너져 버린다. 도리어 몇 번 공연을 봤던 이들에게는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 감동과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문을 듣고, 평가를 어디선가 읽고 온 이들에게는 오로지 웃음에 대한 기대뿐이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극은 보러 간 순간, 배우들의 감정선을 따라 움직여주는 것이 제대로 즐기는 것이다. 그들이 웃겨주면 신나게 웃고 울려주면 울어버리면 그만이다. 팔짱끼고 심각하게 있을 필요도 없고, 더불어 웃겨달라 기대치를 높이는 것도 문제다. 해피투게더는 유명세 덕에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관객들이 자칫 줄어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지난 회 공연에서 맹상열씨의 무게감이 너무 강했던 것도 지금의 해피투게더로서는 치명적이다. 달구역을 맡은 배우가 약해서라기보다는 맹상열씨가 너무 강했다. 미라클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분명 중심배우가 아님에도 중심배우로서 극을 이끌어가는 그였다.


10회째 앵콜인 해피투게더가 좀 더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되려면 좀더 확실하게 관객들이 배우의 감정선을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무게를 골고루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해피투게더는 해피한 연극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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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오랫만에 소극장 연극을 봤다. 소극장 연극은 보는 동안은 즐거움을 보고나서는 유쾌함을 느낀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배우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읽을 수 있고, 더불어 숨소리까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형 극장에서 펼쳐지는 공연들을 보러갈때 '나'는 수동적 관객이 되지만, 소극장에서는 나 역시도 극에 참여하는 인물이 된다. 소극장에서는 나의 동작, 나의 환호가 그대로 배우들에게 전달되고, 다른 보는 이들에게도 전파되어 극을 움직일 수 있지만, 대극장에서는 이런 행위가 불가능하다.


16일 저녁에 본 연극 해피투게더는 정말 유쾌상쾌했고,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연극이 될 듯 싶다. 내용의 줄거리는 어렵게 돈을 모아 이곳저곳에 기부해 온 한 할머니의 집에 도둑이 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다. 보다보면 재미도 있고, 찡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일단 배우들의 감정몰입이 상당했고, 그것이 그대로 보는 이들에게 전달됐다는 점이 뛰어났다.


극중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식을 버렸거나 버림을 받은 이들이 주축을 이룬다. 사회적인 상식으로는 이들은 전부 불행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 조차 가련해보이고, 슬퍼보인다. 그런데 비록 연극이지만, 이 상황에서 이들은 그것 하나하나를 진짜 기쁨으로 풀어나가려 하고, 보는 이들에게 이를 설명한다. 왜 그들이 슬프지만 기뻐하며, 사람들에게도 왜 기쁘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이다.


세상 사람들중 불행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살아갈 수는 없다. 권력이 있든 돈이 있든, 스스로 행복감을 무한하게 느낀다는 사람조차도 스스로때문에 혹은 주위환경때문에, 아니면 타인의 영향으로 어쨌든 불행을 느끼게 된다.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존재함을 가끔 잃어버리는 듯 하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영화  '파니 핑크'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술사 오르페오는 주인공 파니에게 술이 절반쯤 들어있는 잔을 들어보이면 묻는다 "잔이 반이 차 있어, 반이 비어 있어?" 파니가 답한다 "비어있어" 그 때 오르페오는 파니에게 말한다. "왜 지금 네가 갖고 있는 것들은 생각하지 않지? 그것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어"


맞는 이야기다. 어떻게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스스로에게 부여된 불행을 줄이느냐 늘이느냐가 결정된다. 연극 해피투게더는 그 불행이 줄어들게 하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정말 해피하게 말이다. ^^.


만일 스스로가 여유가 없다면 한번쯤 권하고 싶은 연극이다.


ps1. 이 연극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7시 30분에 연극이 시작한다면 반드시 7시 29분까지는 죽어도 입장해야 볼 수 있다. 여타 공연처럼 10~20분 딜레이 되는 경우가 절대 생길 수 없고, 생겨서도 안된다. 그 이유는 공연을 보면 알게 된다. 이런 공연이 무한히 생기기를..


ps2. 실제 바깥풍경을 세트로 이용하는 과감성을 보인다. 아마 해피투게더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웃음 체크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다시 생각해봐도 기발한 아이디어다.


ps.3. 위에서 이야기한 바깥풍경을 이용한 과감성때문에 에피소드도 많이 생길 듯 싶었다. 만일 주위에 의사등장 장면에서 정말 엠블란스라도 지나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16일 공연때는 진지한 장면에서 커다란 나방 한마리가 공연장을 휘집어 놓았다. 그대로 진지하게 공연하는 배우들과 나방 피하고 잡는 관객들의 모습으로..^^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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