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책을 읽는 동기가 순수해야하다는 말이 있다. 그냥 그 안에서 지적 자양분을 맛봐야 한다는 말이란다. 솔직히 책을  읽는데 '순수'와 '불순'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웃기는 일이지만, 난 태백산맥을 시대와 다르게 정말 '불순'한 의도로 처음 읽기 시작했다.


1996년에 중앙일보서 전국 독후감대회를 개최했는데, 당시 제시된 책중에서 왠지 태백산맥을 읽고 써내면 어느정도의 가산이 있을 줄 알았다. 10권에 이르는 대하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는데 설마 그냥 넘기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결과적으로 떨어졌다. 그 후 대학 4년때 다시 심심풀이로 가볍게 읽은 '맞아죽을 각오로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으로 상을 받게 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겼다 --;; -


아무튼 그렇게 읽기 시작한 태백산맥은 대하소설의 재미와 우리 말의 아기자기함의 깊은 맛을 알게 해주었다. 더구나가 슬픈 역사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새기는 계기까지 마련하게 되었다. 막연히 알고있던 조정래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새삼 다시 알게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시대적인 배경도 있다.


내가 태백산맥을 읽을 즈음인 당시에는 연세대 한총련사태가 있었고, 갑자기 대학가의 운동권에 대한 통제가 극심해질때였다. 또한 1994년에 조정래선생이 고소당해 한창 수사중에 있어서 태백산맥이 일종의 '잠재적 불온서적'이었다. 불순한 동기와 지적피폐함 그리고 사회적인 주목성을 지닌 책에 대한 호기심이 동시발동해서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 물론 시작은 앞서 말한대로 불순했다 -


삼국지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처세를 알려주는 책이라면 태백산맥은 한국인으로 살아감에 있어 뿌리찾는 방법과 역사에 대한 반성하는 태도를 어떻게 갖는지를 알려주는 듯 하다. 내가 빌려 읽어서 현재 소장하고 있지 않아 아마도 이 '책 말하기'에는 언제 올릴지 모르지만, 만일 태백산맥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아리랑과 한강도 같이 읽었으면 한다.


<지금은 양장형으로 다시 나온 것으로 안다>



-아해소리-

신고
Posted by 아해소리
         

난 개인적으로 글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다. 다른 사람의 잘 쓴 글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심도 갖는다. 내 스스로 아직 한참 모자름을 알면서도 주제넘게 이곳저곳 글을 쓰며 다닌다. 대학때부터 글을 쉽게 봤다. 신문 8면중에 4면 가까이를 맡으며 매주 수십장 원고지를  3년 가까이 채우다보니,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인터넷 토론카페 등에서도 다른 이들의 글을 우습게 보고, 나의 글에 대한 무게를 측정하지 못했다. 잘 쓴 글에 대해서는 일부러 머리 쥐어짜며 꼭 '딴지'를 걸어야했다. 그런데 그런 내 생각에 제동을 건 책이 바로 조정래선생의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조정래선생은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등의 저자이다. 원래 난 산문집을 잘 읽지 않는다. 그냥그런 수필의 너절한 이어짐은 그보다 더 긴박하게 산 주위 사람들의 치열한 삶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정래선생의 산문집은 내가 충격과 감동을 느낀 소설의 저자임과 동시에 누구보다도 '글'이라는 것에 무게감을 잘 느끼는 작가란 생각에 책 안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사버렸다. 결과는 한동안 난 글을 못 쓰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글'은 의사소통의 주요수단이자 자신의 주장을 적절히 펼칠 수 있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흉기이기도 하고, 살릴 수도 있는 약이기도 하다. 마약과 같은 중독성을 지니기도 했고, 한 사람을 파악하는 데 유효한 기준이기도 하다. 그런 다양성을 지닌 '글'을 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내 스스로의 현학적 표현을 구사해 다른 사람에게 주입 혹은 내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삼았다. 조정래선생의 산문집은 나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 스스로가 나를 혼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음악가가 자신이 곡을 만드는 이유는 더이상 다른 사람들이 곡을 만들 필요가 없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나 역시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더 이상 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다양성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거만하게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이런 거만한 생각이 없지 않지만, 이것이 내 삶의 과정중에 펼쳐질 일이 아닌 인생 끝자락의 목표로 바뀐 것이 조금 달라졌다. 그런데 조정래선생은 자신의 젊은 날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나는 대학시절에 나 이후에 소설이라는 문학형식을 없애버리겠다고 기염을 토했었다. 이 기고만장한 객기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훈련소에서 LMG를 메고 낑낑대며 걷다고 언뜻 깨달았다. 그 깨달음 이후 나는 내가 소설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하기 위해서 나를 수십 번 분해 결합하는 고역을 치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채로 문단에 데뷔, 오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소름이 끼친 것은 조정래선생의 현 수준에서도 이러한 겸손함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갓 어설픈 글쓰기를 시작한 나의 사고와 태도는 어떠한가?. 이 책은 비단 글쓰는 이들에게만 고하지 않는다. 조정래선생의 생각과 태도는 바로 일그러진 현대인들에게 '바른' 아니 정확히는 '차분하고 치열한 시각'의 기준을 제시한다.


내용 자체는 무겁지 않다. 단지 그와 유사한 행위 혹은 인생의 길을 못찾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무거운 느낌과 하늘 한번 쳐다보고픈 새로운 마음이 생기리라 본다.


-아해소리-

신고
Posted by 아해소리
 

친구와 카메라를 살펴보러 충무로를 왔다갔다하는데, 배낭족인 듯 한 외국인 두 명이 다가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외국인 "한국관이 어디죠?" (물론 영어로)


나·내 친구 '멀뚱멀뚱' (둘 다 한국관이 어디인지 모름)


내 친구 "친구, 114에 물어보고 난 후에 전화를 바꿔주는 것이 좋을 듯 싶네"


나 "그럼 잠시 기다리라 전해주게. 내 전화를 해볼테니"


아마도 이 대화의 시간이 길어야 30초 안팎이였다. 그때 외국인의 한마디 "Do you speak English?". 그리고 두세번 더 물어보더니 자기들끼리 서로 쳐다봤다.


나 "잠시만 기다려주시죠. 제가 알아보고요"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성질 급한 내 친구 한마디.


"No, Do you speak Korean?" 외국인 굉장히 당황하며 "No"


순간 내 친구가 무슨 말을 그 친구들에게 할지 눈에 보였다. 내 친구 약간 인상쓰며 "한국말 몰라? Do you speak Korean?"를 연거푸 외쳐댔다.


외국인들 서로 바라보며 당황하기 시작. 친구 가만히 외국인들을 쳐다보더니 일장 연설 들어갔다.


사실 내 친구는  회사 영어 프리젠테이션도 능숙하게 할 정도로 영어를 잘하는 친구다. 그런데 그 친구가 화를 냈던 것은 'Do you speak English?"때문이였다. 다소 앞서나가는 부분일지 몰라도 한국에 여행온 외국인이 한국인에게 영어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한 나라를 여행 온다는 것은 그 나라 문화를 체험하기 위함이고, 그렇다면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노력이라도 해야한다. 그런데 그 배낭족 외국인들은 최소한의 노력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는 그 외국인들에게 이런 부분들에 대해 연설하기 시작했다. 그 외국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 모르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 난 한국관의 위치를 알아내어 설명해주었고...


친구가 한국말을 아냐고 물어본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오바한 거 아냐?"부터 시작해 "야 한국 이미지 나빠졌겠다" "영어 잘하면 처음부터 이야기하면 되지 왜 한국말 할 줄 아냐고 들이대냐"는 등의 대개 친구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주류였다.


문화 어쩌구저쩌구 이야기해도 역시 반응은 "너무 과민반응이야"라는 대답뿐이였다. 나도 과민반응일런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친구의 태도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해외여행 갈때 그 나라 언어 포켓북이라도 사서 비행기안에서까지 달달 외우면서 그들에게는 그같은 수고를 덜어주려 노력하는 이유는 몰까?


"한국은 가면 국민들이 영어를 어느정도 해서 여행하기가 편해"보다는 "한국에 가려면 최소한 기본적인 한국어를 알아놓아야 편한 여행을 해"라는 말이 외국인 여행객들 사이에 퍼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아래는 저작권 침해를 무릅쓰고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선생님이 생애 첫 펴낸 산문집에 있는 글이다. 중간부분은 조금 빼고 선생님의 주장만을 길지만 옮겨본다.


<조정래 산문집 '누구나 홀로선 나무'중에>


"한국에는 다시 오고 싶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너무나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인사동 길을 배경으로 어떤 미국 젊은이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거침없이 하는 말이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그의 국적과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건 KBS 밤 아홉시 뉴스 시간이었다.


-중략-


텔레비전 화면에서 맘껏 방자한 발언을 토해내고 있는 그 미국 젊은이는 추레한 입성에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가 정식으로 여행사를 통해 들어온 관광객이 아니고 흔히 보는 배낭여행족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특히 관광수입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일수록 배낭족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말썽과 사고가 날 우려가 많은 데다가 관광수입에 별로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배낭족들이 뿌리는 푼돈을 긁어모아야 할 만큼 급한 사정이란 말인가. 그런 자들까지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전 국민이 영어를 능통하게 하는 관광안내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나라에도 세계적 경영망을 갖춘 여행사들이 수없이 많다. 한국을 여행하고 싶으면 돈 제대로 내고 그 여행사들을 통해서 들어오면 된다. 그러면 거기에는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아무런 불편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의식이라고는 없이 국영방송이 전 국민의 관광안내원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중략- (나머지는 책에서 보시길)

-아해소리-

신고
Posted by 아해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