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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2일 화성연쇄살인사건 공소시효 만료와 함께 난 < 내가 기억하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이라는 글을 올렸다. 현재는 1994년 행정구역 편입으로 안산시에 살게되었지만, 지금 그 자리는 당시 화성군 (현재는 시로 승격) 자리였다. 때문에 '살인'이라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법적 구속력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같은 해인 2006년 12월 14일부터 또다른 제 2의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6년동안 10회의 살인사건이 벌어졌지만, 이번에는 3년 동안 무려 7명이 살해당했다. 지역도 당시에는 태안쪽이었지만, 이번에는 반월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군포, 안산, 수원 등의 지역이 거론되어 사람들 입장에서는 넓게 생각될 지 모르지만, 이 지역은 모두 15여년 전에는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내에 소속되어 있는 '리'단위의 지역이다. 반월동사무소를 중심으로 모두 승용차로 5분 거리 안에서 둘러볼 수 있는 지역인 셈이다.

이전에 쓴 글 내용에 이런 글이 있다.

화성군 (지금은 시로 승격)은 가본 사람은 알지만 굉장히 넓은 지역이다. 지금도 서울시보다 넓지만, 당시에는 현재 안산시, 수원시, 군포시 등으로 편입된 지역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그 규모가 어떨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화성연쇄살인이 발생하고, 이후에 최근 여대생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현장을 가본 사람들은 "이러니 어떻게 미연에 방지할 수 있나"라는 말을 내둘렀다.


이 글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살인범 강호순이 암매장한 지역은 이같이 넓은 농지 중심의 지역이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진지 18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지역은 그대로인 것이고, 범죄도 비슷하게 발생한 것이다. 암매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구반월 지역과 상록수 역 근처 야산을 뒤지다가 또다른 시체를 발견했다는 말이 택시 기사들 사이에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도권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고, 대부분이 타지 사람들로 어느 새 꽉꽉 채워져있기에 전과 같은 마을의 정이라는 것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지역은 과거 '화성연쇄살인사건'때와 달리 집성촌 (같은 성씨끼리 모여사는 동네)이 형성되어 있어, 타지인들의 도둑질은 있을지언정 이같은 극악한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다. 창말 00씨네, 대야미리 00씨네, 건지미 00씨네, 웃말 00씨네, 입북리 00씨네 등으로 구성된 지역이기에 금방 누가 어떻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이 귀신보다 점점 더 무서워지고 있는 세상으로 변해간다는 것에 이미 편입되어 있는 상황으로 변했다.

범인이 잡혔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느 새, 세상이 강호순과 같은, 유영철과 같은 범죄자가 만들어지기 쉬운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사건을 100% 사회 구조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교육이나 분위기 등으로 충분이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아해소리 -

PS. 전에 버스를 탔을 때 고등학생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들었다. "000가 이번에 나보다 점수 더 잘나왔는데 정말 죽이고 싶다". 경쟁에서 뒤떨어지고, 사회에서 소외받고, 관심 속에서 멀어진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조금 배웠다는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이성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고고한 자세로 외치지만, 이미 인성이 형성되는 10대에 이성을 버린 채 '경쟁''성적''성공'의 방법만 배운 이들에게 뒤늦게 '이성'을 외친다고 과연 그것이 먹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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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반월역.....물론 그 어떤 역이 사연인들 없겠습니까. 이 역이 만들어질 당시 저 역시도 초등학생이였기에 아주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원래 반월역은 현재 그 자리에 들어설 것이 아니였죠. 현재 반월중학교 뒤편 (반월역에서 상록수로 가다보면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보임.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질 계획이였습니다. 그곳서 남자 걸음걸이로 3분정도 가면 반월동 (당시 반월면)의 중심거리와 만나게 됩니다. 현재의 역에서는 대략 10~15분정도 걸립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당시 상황에 도와주지 않았던것이죠. (참고로 당시 임시라도 반월중학교 뒷편에 역을 세워주리고 하고 26여억원 더 투입되어 현재처럼 평평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대로죠)


현재 반월역이 세워진 땅은 당시 대한생명 회장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나는군)의 땅이였다는군요 (정확히는 현재 주차장 자리). 그리고 시대는 전두환이 대통령하고 있을때고요. 그럼 쉽게 연관이 갈 겁니다. 당시 철도청 고위간부가 내려와서도 자신이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일이라며 반월면 대표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올라갔다더군요. 역사가 세워지고 수도권의 한 줄기를 차지하는 공사가 벌어지는 땅이니 그 땅값이 올라갔음은 쉽게 알 수 있겠죠. 그러한 연유로 수많은 반월사람들의 편의는 무시된채 세워진 것이죠.


반월은 수도권내에서 드물게 집성촌이 강한 곳입니다. 지금도 반월역주변으로 창말이라 불리는 곳은 한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차로 5분여정도를 반월저수지방향으로 들어가면 민씨성이, 다시 수원쪽 방향으로 가다보면 건지미라는 곳은 유씨성이 모여살고 있죠. 집성촌은 그 특성상 뭉치기를 잘합니다. 그러한 특성이 있는 동네에서 주민들의 편의가 무시된 채 하나의 역이 만들어졌다면 당시 상황을 알만 할겁니다.


흔히들 반월이라 하면 초중고교 교과서에 나오는 '반월공단'과 쉽게 연관지어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반월공단은 안산역과 가깝고 반월역과는 안산 중심가를 가운데 두고 극과 극입니다. 과거에는 반월공단은 신반월, 현재 반월역이 있는 곳을 구반월이라 칭하였죠. 꼭 뿌리라 말할 수는 없지만, 안산내 몇몇 초등학교의 본교가 반월국민학교였고, 안산시 단위농협의 본점도 반월에 있는 것을 보면 그다지 작은 지역이 아니였음을 알 수 있겠죠.


아...마지막으로 반월역 뒷길...그 길은 지역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이지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길이 아닙니다. (현재의 보도블록은 근처 한 공장에서 깔아준 것입니다)  앞쪽 길의 경우 차를 이용하거나 마을버스를 이용할 경우 편리할 수 있지만, 도보를 이용해 갈 경우 뒷길보다 더 위험하죠. 보행자길이 극히 좁아 교통사고의 위험이 더 크거든요. 때문에 뒷길이 실질적으로 더 안전합니다. 물론 밤에 여성 혼자 다니는 것은 위험하죠. 하지만, 서울시내 주택가 골목길보다는 덜 위험하다는 것이 이 지역에 오래 산 사람들의 생각이죠. 그 길을 혼자 다니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전철이 들어와 사람들이 단체로 내려 수명의 사람들이 같이 걸어가기 때문이죠.


처음 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밤에 섬뜩하고 옆에 무덤들도 있고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런지 모르지만, 이는 단순히 어둠과 무덤때문만이 아닌,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정도로 전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반월역은 지역민들에거 거리상으로 아직 멀어도 심적으로는 가까운 역입니다. 수원, 안산, 안양, 의왕, 군포, 시흥 등을 연결시키는 거점이면서도 희한하게 교통편이 불편해 하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이동시켜주는 유일한 공간이였기 때문이죠. 때문에 조금 다리의 불편함이 있었도,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역입니다.


역에 대한 이곳 주인장의 관심을 높이 사며, 반월역이라는 이상한 나라의 공간을 소개해 준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 ^^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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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