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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6.11.25 아버지. (2)
  2. 2006.02.21 아버지의 편지.
  3. 2006.02.06 시대의 각인...그리고 무서움.
  4. 2006.01.02 아버지와 로또.

아버지.

기타의 기억들 2006.11.25 22:57


 

대학년 2학년때부터 혼자 자취를 하기 시작했다. 방에 누가 쓰다 놓은 침대, 4칸짜리 책장 2개, 전혀 어울리지 않는 테이블. 그게 다였다. 문제는 그나마 이런 것들 마련하느냐고 수중에 돈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다. 2월이라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어려웠고, 개인적으로 장기 아르바이트를 할 처지도 아니였다.


밖에서 흥청망청 놀 처지도 아니기에 할 수 있는 것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이나 잔뜩 빌려다가 읽는 것 뿐이였다. 그 때 읽은 책들 중에 대부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유독 기억나는 책이 '아버지'다.


간간히 글에 쓰긴 하지만 반골기질이 강해서인지 남들이 좋다는 것은 일단 무시하고 지나간다. 좋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 내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보고싶은 것도 아니며 언제가 인연이 있으면 볼 것이며 쓸 것이고 읽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에 책 '아버지'는 열풍이였다.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냥 감정을 건드려 판매부수나 올리는 식이려니 하고 지나친 책이지만, 가볍게 주말에 읽을 정도는 될 것이라 생각해 빌려와 한장 한장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채 가기도 전에 난 울고 말았다. 아마 정말 제대로 눈물을 흘린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 아닐까 싶었다.


진부한 내용일지 모른다. 아버지란 단어는 누구에게나 희한하게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다. 정감, 그리움, 외로움, 든든함, 거부감, 틀, 울타리, 공허함, 쓸쓸함, 뒷모습, 무거움, 벽, 단절, 줄.......그 모든 감정들이 섞이면서 내가 왜 우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울어버린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법 이제는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 물론 쓸데없는 이야기다. 성향이 다른 정치이야기를 하면 아버지를 열을 내면서 말씀하신다. 옛날에는 아니라고 반박도 했지만, 지금은 그냥 묵묵히 듣는다. 아버지가 아시기 때문이다. 아들 직업상, 그리고 성격상 그러한 이야기를 제법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머니나 누나 그리고 남동생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통하는 그러한 이야기를 큰 아들은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때문에 아버지는 약주 한 잔 하시면서 목소리 높혀 정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열변을 토하신다.


가끔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내 뒤에 오셔서 이것저것 질문을 하시곤 한다. 컴퓨터를 거의 못 다루는 아버지지만, 또한 자존심 강하셔서 배우려 하지 않는 아버지지만 아들이 뭘 하는지 지금 나오는 모니터 속 장면이 뭔지 궁금해 하신다. 몇 년전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오랫만에 서점에 들렸다가 소설 아버지는 아니지만 아버지에 관한 책이 눈에 띄여서 한 글 적고 나간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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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TAG 아버지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계셨다.
술을 드셨다 하면 소리를 지르시고
어머니와 다툼이 많아서 조용할 날이 없었다.

관절염이 심해져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술주정은 극에 달했고 식구들은
아버지 때문에 늘 마음을 졸여야 했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의 어느 날,
그날따라 주정을 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제발 그만 좀 하세요.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사회적으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가장으로서의 위신도 세울 수 없는 당신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할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아버지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며칠이 지난 후,
우연히 안방에서 아버지의 잠든 모습을 보게 되었다.
부쩍 늘어난 흰 머리, 마른 얼굴...
'많이 늙으셨구나.'
잠든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 쇠약해 보였다.

돌아서 나가려는데 아버지 옆에 놓인
하얀 종이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매만졌는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 종이를 펼쳐 든 순간 울컥 눈물을 쏟고 말았다.

막내에게..
미안혔다.
초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한 아버지의
삐뚤삐뚤한 글씨 두 줄이
당신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아들의 눈시울을
자꾸만 적시고 있었다.


- 새벽편지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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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TAG 아버지


난 아버지를 존경하고 좋아한다. 아직도 무섭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리고 아버지가 늙어가면서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거기서 난 존경을 느낀다. 그런 아버지와 내가 서먹해지는 주제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아버지의 강한 주장에 내가 서먹해져 자리를 피하는 상황이 가끔 벌어진다. 바로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전라도를 싫어하신다. 아주 오래전 그곳에서 어떠한 일을 전라도 사람들에게 당했는지는 몰라도 전라도에 대해 다소 적대적이까지한 감정을 가지고 계신다. 때문에 98년도 김대중정부때부터 열우당이 집권한 지금까지도 정부의 일은 늘 못마땅하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TV에 나올대면 뉴스를 돌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뚜렷하게 이것때문에 전라도를 싫어한다는 요점을 잡기가 어렵다. 사람이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는 것은, 그리고 선한 이와 악한 이가 존재하는 것은 서울, 경기도, 경상도 모든 곳에 상존한다. 그런데 유독 전라도를 말한다.


어느 날인가 내 머리속에 떠오른 것은 80년대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그때 이장일을 보셨다. 지금의 동장과 같은 개념이지만, 당시 이장은 지금의 동장이상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사를 가려고 해도 이장의 도장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통제의 시대에 최일선에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의도였던 아니였던 간에 아버지는 7년을 넘게 그 일을 보셨다.


전두환의 독재정권의 장기화와 조선일보 등의 아첨신문들이 여론을 판칠 때, 정기적으로 정부의 교육을 받고, 다시 반상회라는 것을 통해 정기적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그 교육의 내용을 전파했던 것이다. 때문에 아버지의 머리속의 전라도는 독재정권이 원했던, 수구언론이 원했던 그 시나리오대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97년 대선때부터 박정희가 다시 살아났다. 아니 원래 살아있었는데 이인제와 김종필이가 전면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지배하려 한다. 그 맨 앞에는 당시 교육을 받았던, 그 교육받은 이들에게 여론을 팔아먹는 기생언론들을 앞장세우며 말이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이젠 전두환까지 살아나려 하고 있다. 즉 독재의 모든 원흉과 사상과 제도가 다시 대한민국 국민위에 군림하려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난 아버지와 정치이야기를 할 때, 입을 다문다. 80년대의 사상의 희생자일 수 있는 아버지와 논쟁을 벌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런 아버지일수록 내가 설득해 세상을 제대로 보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러나 난 삶의 중반을 넘어 끝으로 가고 계시는 분에게 그런 잔인한 일은 할 수 없다고 반문했다.


리영희선생님은 자신이 진실을 말할 때, 그 진실을 받아들이고 충격을 받은 70년대 대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했다. 진실을 아는 것만큼 힘든 것은 없다고 했다. 어둠속에 익숙해져 편하게 사는 사람에게 조그마한 구멍을 뚫어 세상밖 빛을 보여주는 것은 잔인한 짓이라고 했다.


난 아버지의 생각을 바꿀 의향이 없다. 이젠 아버지가 공적으로 어떤 의사표명을 할 위치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아버지를 생각을 아직도 붙잡아두고 있는 70년대, 80년대 사회가 무섭고 경멸한다. 그리고 그 일그러진 사회의 틀을 붙잡아 국민을 속이려는 사람들은 더더욱 경시하고 싶다.


머리속 깊이 각인된 사회....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온갖 정보가 오픈되어 공유되는 시대라도, 시대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사상의 옳고그름은 정말 중요하고 위대하지만 때로는 저주스럽고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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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매주 몇 억씩 터지는 로또에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걸고 절망을 걸고 합니다. 저도 가끔은 지나가다 5천원치 로또를 사서 그 주 마지막을 기다리곤 합니다. 하루 점심 값정도면, 그냥 게임한다는 기분으로 쉽게쉽게 살 수 있는 5천원치를 말입니다. 그 로또가 저에게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몸이 아프셔서 수 년째 '직업'이 없는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로또의 무게는 저에게 다르게 찾아왔습니다. 회사에서 돌아와 제 일을 하고 있던 중, 아버지는 제 방문을 열고 물어보셨습니다.


"로또가 얼마냐"


"한 게임하는데 1천원인데 한장에 5천원이요? 왜요 아버지"


"아니. 내일 만원줄테니 만원어치만 로또 사올래"


"아버지 할 줄 아세요?"


"아니 모르니까 네게 부탁하지"


"뭐 좋은 꿈이라도 꾸셨어요?"


"아니 뭐. 내일 사올 수 있냐?"


"네"


혼자만의 생각일런지 모른다. 하지만 왠지 나에게 쓸쓸하게 들렸다. 그냥 기분이 그랬다. 많은 돈을 벌지 못하는 내 스스로가 씁쓸했고, 넉넉치 못한 용돈을 드리는 내 자신에 대해 미워지기까지 했다.

1만원어치 로또게임은  한낱 게임일뿐이지만, 아버지에게는 수년간 가장의 모습의 반쪽을 읽어버린 서글픔의 표상이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평생 복권조차 도박이라 생각하여 손도 안대신 아버지였다.


수억원의 1등이나 수천만원의 2등은 바라지도 않는다. 아버지가 사시는 10게임중 단 하나라도 단 5천원이라도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해본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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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