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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은 드라마, 영화, 뮤지컬, 연극 등 수많은 형태로 대중들과 만나왔다. 너무 많이 알려졌기에 사람들은 기본적인 스토리만을 보고 ‘햄릿’을 찾지 않는다. 누가 연출하고 누가 각색하고 누가 연기했느냐에 따라 어떤 맛이 나올 지에 관심을 가진다. 연출자가 어느 포인트에 힘을 주느냐에 따라 ‘햄릿’은 다양한 색깔을 낸다.

서울시극단 창립 15주년 기념 정기공연으로 무대에 오른 연극 ‘햄릿’은 대학로 간판 연출가 박근형씨가 2011년 현재 시점에서 재해석했다는 면에서 이전 햄릿과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불이 켜진 무대는 ‘코션’(CAUTION)이라고 쓰인 2층짜리 컨테이너를 보여준다. 검은 정장 차림의 햄릿, 회색 정장에 자줏빛 베스트를 입고 등장한 삼촌 클로어디스 등 무대 위 배우들의 옷차림은 햄릿의 배경이 현대로 넘어왔음으로 알려준다.

대사도 현대적이다. 아니 현실적이다. ‘조간신문도 짜증난다’ ‘너희들의 엿 같은 하느님’ ‘방사능 낙진’ 등의 말은 웃음과 함께 의미를 더했다. 휠체어를 타고 놀 듯 등장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읊는 햄릿의 모습은 한층 가벼워졌다. 그렇다고 무게감까지 내려놓은 것은 아니어서 이전 햄릿들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는 균형감각을 유지한다.

또 첫 장면에서 “성벽 위에서 매일 밤 불꽃놀이 축제가 벌어진다. 누구냐,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라는 대사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소통되지 않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풍자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이명박과 현 정권에 대한 비꼼이다. 명박산성은 그래서 우뚝 서있다.

연극의 또다른 강점은 스피드다. 배우들의 빠른 대사 처리와 쉴새없이 바뀌는 장면들은 관객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이는 오필리어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미쳐서 죽음에 이르는 장면을 더욱 애절하게 만든다. 관객들이 숨을 쉬는 타이밍에 가장 감정 몰입도가 높은 장면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연출가 박근형 씨는 김철리 서울시극단장과의 대담에서 “2011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동시대적 질문을 햄릿이라는 텍스트를 통해서 던져보고자 했다”며 “물론 그 질문이 제대로 전달될지 관객들이 거기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지만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닌 우리 얘기로 전달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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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이번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팀의 내한 공연을 한국 라이선스 공연과 비교하면서 봐주지 않길 바랍니다. 이번 브로드웨이 팀의 공연은 라이선스 공연과 개별의 작품으로 관람해주시길 바랍니다" (트루뮤지컬컴퍼니 임한성 대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브로드웨이팀이 지난 8월 28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한국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지킬앤하이드' 라이선스 공연을 봤던 이들은 오리지널팀의 실력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오페라의 유령' 내한공연과 뮤지컬 마니아들은 '브래드 리틀'이라는 이름에 끌려서 광화문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그리고 제작사인 트루뮤지컬컴퍼니의 대표인 임한성 프로듀서는 언론을 통해 관객들에게 브로드웨이팀과 라이선스팀의 공연을 별개로 봐주기를 요구했다. 그렇다면 관객들의 반응은 어떨까. 이들은 어느 새 조승우와 브래드 리틀을, 류정한과 브래드 리틀을, 벨린다 월러스톤과 김선영을, 루시 몬더와 김소현을 비교하고 있었다.

'지킬앤하이드'는 원작을 제대로 읽지 않았고 뮤지컬을 보지 않았던 이들에게도 스토리는 널리 알려져있다. 뮤지컬을 보러가는 이들에게는 이를 얼마나 배우들이 무대에서 잘 표현하는가를 알고 싶어서 공연장을 찾는다. 이런 면에서 번역되어 전달되는 의미보다는 확실히 한국어로 감정 표현을 하는 라이선스 공연이 유리하다. 번역문이 뜨는 스크린과 무대를 번갈아가며 봐야하는 브로드웨이 공연보다는 무대와 뮤지컬 넘버를 한 눈으로 즐길 수 있는 라이선스 공연이 친근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을 뺀다면 브로드웨이팀과 라이선스팀의 격차는 배우 개인에서 찾아야 될 듯 싶다.

'지킬앤 하이드' 브로드웨이팀은 사실 브래드 리틀의 브래드 리틀에 의한, 브래드 리틀을 위한 공연이다. 라이선스 공연의 경우 조승우나 류정한, 홍광호가 분명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지만, '지킬앤하이드' 공연을 풀어나가는 스토리 내에 존재하는 뛰어난 '한' 배우의 위치에 서 있다. 루시, 엠마를 비롯해 댄버스경, 존 어터슨 그리고 나머지 배우들과 각각의 영역을 나눠 돋보이거나 혹은 받혀주거나 한다. 그러나 브래드 리틀은 철저하게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스토리를 이끌고 간다. 루시나 엠마가 끼여들 여지가 없다. 편안한 음색과 감정 표현, 성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를 기본으로 무대를 쥐었다놨다하는 관록은 브래드 리틀만이 가능한 듯 싶었다.

이것이 가장 극적으로 보여지는 장면이 '지킬앤하이드'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과 '대결(Confrontation)'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라이선스 공연에서의 '지금 이 순간'은 극의 한 흐름으로 존재했다면, 브래드 리틀은 'This is the moment'을 말 그대로 그 순간만 존재토록 했다. '대결(Confrontation)'은 보는 이들마다 달리 평가할 수 있겠지만, 라이선스 공연이 '현란함'을 선사했다면, 브래드 리틀은 '테크닉'의 정석을 보여줬다. 일부에서는 라이선스 버전이 다소 코믹스럽다고 했지만, 빛의 영향으로 둘 다 느껴지는 차이는 없다. 그러나 커트콜에서 관객들에게 보여준 카리스마와 여운은 라이선스 버전이 좀더 진했다.

루시와 엠마에 대해서는 라이선스 팀의 역량이 한 수 위라 할 수 있다. 성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김선영과 소냐, 김소형이 보여준 캐릭터를 비교해보면 그렇다. 술집 댄서이자 하이드에 갇혀 사는 루시의 천박하고 두려운 모습을 김선영과 소냐는 '푹' 빠져서 표현했다. 김소형과 임혜영 역시 엠마의 연약함과 사랑스러움을 보다 도드라지게 드러냈다. 일부의 설명과 같이 5년 간의 라이선스 공연에 익숙해져서 그런 면도 있겠지만, 지킬과 동등한 한 축의 여성으로 존재하는 라이선스 공연과 달리 브래드 리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브로드웨이 팀에서 이들의 역량이 제대로 보여지지 않은 측면도 있다.

임 대표의 말대로 이들 공연은 각각 달리 봐야 한다. 아니, 무대 공연은 각 회마다 모두 다른 공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비교'의 재미 또한 뮤지컬 관객들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며, 무료 공연이 아닌 10만원대가 넘는 비싼 티켓을 사고 봐야 하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후회하지' 않은 공연을 선택키 위한 비교는 불가피할 듯 싶다.

한편 앞서 1일과 2일 공연에 브래드 리틀이 성대 이상으로 립싱크를 하거나 커버(대역 배우)가 대신 무대에 서서 관객들의 비판을 받았다. 이에 브래드 리틀에만 초점을 맞춰 무리하게 진행된 공연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었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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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유쾌함과 불편함이 공존한다는 것은 극히 모순적이다. 관객들은 몸은 음악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데, 머리 속에서는 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뮤지컬 '자나,돈트'는 동성애가 아직도 접근하기 힘든 상황에서 한국 관객들에게 이 모순된 두 상황을 제시한다.

남-남 커플과 여-여 커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남-여 커플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사황이라고 말하는 뮤지컬 '자나,돈트'에 대해 연출과 출연진이 말하는 것은 동성애가 아닌 사람들간의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 전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사람들 사이에 이뤄지는 모든 사랑은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동성애와 이성애가 각각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이같은 '자나,돈트'의 메시지는 온전하게 전달될 수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이성애자들이 주류로 있고, 동성애자들이 비주류로 있기에 '자나,돈트'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어쩔 수 없이 소수자를 위한 찬송가가 되어버린다. 여기서 관객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특히 배우 제이 로드리게즈가 자나 역을 맡아 오프브로드웨이를 흔들었던 미국 뉴욕에서의 공연과는 달리 대한민국 광화문의 관객들은 남자 혹은 여자끼리 키스하며, 손 잡고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이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것에 대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뮤지컬은 뮤지컬로만 봐야된다고 하지만, 문화는 사회를 반영하거나 혹은 거꾸로 사회를 이끌고 가는 역할을 하기에 단순하게 이를 가상의 공간을 그린 뮤지컬로만 인식하는 수준에서 그치기는 어렵다. 특히 최근 영화나 케이블 드라마에서 불고 있는 동성애 코드와 주 내용은 아니지만, 초연 당시 파격이었던 뮤지컬 '렌트'의 동성애 상황이 이성애자가 정상인 사회에서의 동성애자가 사는 방법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뮤지컬 '자나,돈트'는 아예 세상을 바꿔버려 현실을 비웃고 있다. 순식간에 공연 내내 소수자가 되어버린 관객들은 무대 위의 성정체성 코드와 오가는 말에 대해 초반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나 이런 불편함은 이내 곧 '유쾌함'으로 인해 희석되고 만다. 12명의 무대 위 배우들의 빠른 움직임과 코믹스러운 상황 설정 그리고 쉴새 없이 쏟아내는 대사들과 노래들로 인해 관객들은 머리 속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을 몸으로 느껴지는 유쾌함과 맞바꾸게 된다. 또 무대를 아기자기하게 이끌고 가는 자나 역의 김호영 (더블캐스팅 이진규)과 관객들을 흡입하는 성량과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로버타 역의 김경선, 로버타와 더불어 애정 문제를 코믹스럽게 풀어놓는 마이크 역의 박주형 등의 열연은 관객들을 하트빌 고등학교의 상황으로 빠르게 안내한다. 또 비록 연출가 드버낸드 잰키로 인해 미국의 상황을 그대로 옮겨놓으려는 듯해 느껴지는 조금은 거북한 분위기를, '청계천''MB 운하''김연아 선수' 등을 거론하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도 나름대로 한국의 관객들을 배려한 인상을 준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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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사실 1막은 조금 지루했다. 조연들의 현란한 몸짓과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가 들리기는 했지만, 단조로운 색채는 피곤함을 안겨줬다.

지난 1월 29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어떻게 꾸며 관객들에게 어필하는가가 관건이다. 특히 이미 2007년 공연과 더불어 '레딕스 십계'와 '노트르담 드 파리' 등으로 인해 어느 정도 불편함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국내 관객들은 빠른 속도의 이야기 전개와 유쾌함, 군무 형태의 안무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2007 '로미오 앤 줄리엣'의 고민은 고스란히 2009년으로 대물림될 수 밖에 없었다.

결론은 배우들의 넘버 소화, 안무, 음악, 화려함은 여전했지만, 단조로운 의상과 조명, 부드러운 음색으로 인한 단조로움은 여전했다.

레드와 블루로 대표되는 캐플렛가와 몬테규가는 색으로 인해 대립과 증오가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없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는 했지만,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는 좀더 다채롭게 꾸밀 수 있지 않았나 싶었다.

또한 여전히 '죽음'의 역할은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느 정도 내용을 아는 이들에게도 '죽음'이 던지는 메시지를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 극 전체가 표현하는 복수와 폭력, 죽음과 저주를 이야기하지만, 그 이야기의 전달 강도는 낮았다. 어쩌면 이는 뮤지컬 자체에서 '죽음'이라는 캐릭터의 필요·불필요의 구분을 지어 평가하기보다는, 국내 관객들이 캐릭터가 명확하고도 확실한 위치를 점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인 것은 부드러움과 강렬함을 오가는 뮤지컬 넘버와 힙합, 브레이크댄스, 아크로바틱 등 역동적인 배우들의 움직임이 극의 몰입도를 높힌다는 것이다. 남성 앙상블과 여성 앙상블이 다소 과격하게 몸을 부딪치며 싸우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어쨌든 '싸움'을 잘 묘사했다는 느낌을 주긴 했다. 또한 이번에 처음 공개된 '스무살이 된다는 것'은 물론 새로이 구성된 '시인의 노래' '사람들이 수군대지''권력' 등은 풍성함을 더했다. 특히 줄리엣의 유모가 홀로 무대에 서서 부르는 '그녀가 사랑에 빠졌네'는 풍부한 성량은 물론, 줄리엣의 마음을 줄리엣보다도 더 강하게 관객들에게 어필했다.

여기에 이미 널리 알려진 '세상의 왕들''사랑한다는 건''베로나' 등은 배우들의 한층 농익은 실력으로 인해 더욱 친숙하게 다가왔다.

돋보였던 것은 공연이 끝날 무렵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와 배우들과 공연의 끝을 즐겼다는 것이다. 앵콜곡과 안무가 극을 위한 것이 아닌, 관객을 위해 서비스 한 셈이다. 특히 지난 1월 31일 공연에서는 '캐플렛경'역을 맡은 배우 '아리에 이따'가 생일을 맞이해 관객들의 축하를 받은 모습은 편안하게 느꼈다. (케익을 들고 나올때 불이 꺼질랑말랑한 그 아슬아슬한 느낌은.ㅋ)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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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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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진실'을 은폐하려는 사람들은 '진실'을 아는 순간 더 혼란에 빠질 수 있기에 '거짓'을 말해야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대부분 불순하다. 무엇인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에게 '진실을 아는 고통'에서 해방시켜주겠다고 으름짱을 놓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때도 있다. 특히 종교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연극 '순교자'는 이같은 말에 부응하면서도 진실에 대한 '은폐'가 아닌 또다른 '진실'에 대한 접근을 말하고 있다. '순교'라는 종교적 가치에 대해 '진실'과 '거짓'을 충돌한다. 진실을 아는 순간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잇따를테고, 거짓이 그대로 유통되면 몇몇 사람들만 고통스러워 하면 된다.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극단이 세종문화회관 개관 30주년과 한국 신연극 100주년을 기념해 무대에 올린 연극 '순교자'는 최근 급격히 가벼워진 연극계에서 보기 드문 무거운 연극이다. 그리고 그 무거움 안에서 연극은 '진실'과 '거짓'에 대해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혼란스럽게 한다.

배경은 6.25전후 쇠락한 평양의 중앙교회다. 육군본부 정보국장 장 대령은 육군특무부대로 평양에 파견된 이 대위에게 한국전쟁 당시 평양에서 공산당에서 감금된 14명의 목사를 조사하라고 말한다. 이중 12명은 처형당했고 2명은 살아남았다. 연극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삶과 죽음에 대해 진실을 밝혀내려고 한다. 진실이 따로 있음을 직감한 이 대위는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남은 신목사에게 진실을 요구하지만 신목사는 '진실'에 대해 고민한다. 또 '순교자'가 되어야 할 '죽은 자'들에 대해 장 대령 역시 '진실'을 말하기 꺼려한다. 그러나 당시 이들을 처형한 공산당 정 소좌는 목사들의 죽음에 대해 밝히면서 그들이 신앙을 부정했다고 말한다. 도리어 살아남은 신 목사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시 신목사에 의해 부정된다.

연극 '순교자'는 1969년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김은국의 동명소설을 무대로 옮긴 것으로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극은 이 대위가 상황에 대해 독백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극의 무게감과는 별개로 관객들의 집중도는 후반으로 갈수록 떨어지는 편이다. '목사들의 죽음'에 대한 극적 반전도 다소 떨어지는 상황이다. 정 소좌의 발언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기는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한 상태로 끌고간 상황에서의 반전이기에 후반부 '추모 기도' 장면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중간중간 제대로 대사가 전달이 안되는 것도 아쉽다.

그러나 최근에 보기 드문 생각하는 연극임에는 틀림없다. 연극이 무대 위 배우를 통해 세상사와 인간을 이야기해야 하는 예술이라면 연극 '순교자'는 이에 충분히 부응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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