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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선 아나운서와 SG워너비 출신 채동하가 잇따라 자살하면서 사람들이 삶에 대해 생각하는 모양이다. 누구는 정말 살고 싶어하는 이 상황에서 당신들은 왜 자살하냐는 다그침도 있고, 그들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사회가 안타깝다고 말한다.

언론은 원인 찾기에 나섰다. 우울증이라는 기본적인 내용을 두고 온갖 들춰내기를 해댄다. 헛짓하는 언론은 채동하의 노래 '글루미 선데이'를 들춰내기도 한다. 죽은 자이기 때문에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누구도 모른다. 그냥 죽음만 기록해야할 사람들이 죽음을 분석한다.

한 누리꾼이 말한다. 이들의 죽음을 기리고 있는 당신들의 삶은 아름답냐고. 그런데, 그 댓글을 볼 때, 난 MBC '위대한 탄생'을 봤다.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떠나서, 연변 클럽에서 노래부르던 이가 한국에서 당당히 한 프로그램의 1위를 차지했다. 극적으로만 보자면 허각보다 한 수 위다. (이를 살리지 못한 MBC가 한심할 뿐).

누구나 삶이 아름답지는 않다. 나도 내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많지 않다. 기준 찾기에 급급했다.

"난 누구보다는 낫다" "난 누구보다는 못하다" "나 누구랑 비슷하다"는 등의 기준 찾기 말이다. 결국은 "난 나야"라는 위로식의 결론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나인줄은 알면서도 그 안에 뭔가 행복을 찾는 길을 스스로 제시하지 못했다.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게 인생의 길을 제시하지는 않을 듯 싶다. 그러나 자살한 이들은 이 소소한 것조차 찾지 못했던 것일까.

다시 나에게 묻고 싶다. 내 삶은 아름다운가..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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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서로간에 계파를 만들며 '내 사람 심기'에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고 하는 모습을 오래 전부터 봐왔다. 물론 이는 아마 모든 사람들이 어릴 적 "너 나랑 친해? 재랑 친해?"라는 말을 나눌 때부터 시작되었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말이 사회에서 더욱 심하게 거론되는 것 같다. 오죽하면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이 떠돌아다니고 여기에 우선은 눈치 잘 보라는 말이 나온다.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 여기에는 일명 건전한(?) 말도 나온다. 자기 능력을 계발하고 좀더 정확하고 빈틈없이 노력을 하며 공사 구분을 잘하고, 사적인 공간에서도 긴장을 풀지 말고, 일찍 출근하고 조금 늦게 퇴근하고, 인간 관계를 잘 만들 것이며, 일개 사원이 아닌 마치 CEO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라는 말 등등등.....

그런데 이렇게 하면 정말 살아남을까. 아니 정확하면 저런 것까지 고민하며 '살아남는'이라는 수식어를 꼭 자기에게 붙히고 싶을까 싶다.

이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하다가 문득 내린 결론은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깨우치고 배울 것이 아니라, 직장을 즐기는 법을 알아야 된다는 점이다. 그 직장이라는 공간이 현재의 나의 직장이 될지, 또다른 직장이 될지, 지금보다 처우가 좋은 직장이 될지, 처우가 낮은 직장이 될지 모르지만, 우선은 그 공간을 즐기는 방법을 먼저 알아두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 공간을 즐기다보면, 그리고 그 공간으로 인해 즐거움을 느낀다며 그공간을 쉽게 떠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떠나지 못할 공간이라면, 그리고 떠나고 싶지 않은 공간이라면 충실하게 마련이다. 누가 시킨다고 되는 일은 아닌 듯 싶다.

정말 직장이라는 공간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면 (그것이 현재든 미래든) 떠나야 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누군가는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 사치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럼 왜 살아갈까 싶다. 괴로워하며 즐기지 못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말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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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바쁜 와중에 한번쯤 이것을 생각한다. 특히 스스로의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왜 자신이 사는지,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조차 고민할 여유조차 박탈당했다면 어떨까. 고통 그 자체를 인식조차 못하는 상황이 일상화되었다면 말이다.

현재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밑바닥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러시아의 막심 고리키가 1902년 발표한 희곡으로 더럽고 어두운 싸구려 여인숙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여러 인간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젊은 도둑, 한때 지식인이었지만 이제는 사기꾼이 된 인간, 성공하고 싶어하는 수리공, 망한 귀족이 남작, 순수한 아가씨 나타샤 등 현대 사회의 거대한 모순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존엄'을 잃고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이번 공연은 1900년대 우울했던 러시아를 2009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창조적이고 높은 수준의 작품을 보여주고자 했다.

작품이 주는 울림은 크다. 단순히 밑바닥 삶을 그려서 그런 것이 아니다. 희망과 현실 사이에 존재한 묘한 연결고리와 괴리감이 공존해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삶이 변화되는 것도 아니지만,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가졌을 때 가지는 기쁨은 잠시 뿐이고 그 희망이 박탈당했을 때 느끼는 삶의 수렁은 이전보다 더 깊이 들어간다. 사람들은 연극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희망이 헛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 헛된 희망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관객 개개인이 공연 직후 가져가야 할 보따리의 크기는 달라진다.

연극 '밑바닥에서'가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된 이유는 사실 젊은 도둑 '페펠'을 최근 예능프로그램에서 주목받는 김수로와 뮤지컬 배우이자 연기자인 엄기준이 나온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연극에서 주연과 조연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등장인물 모두가 삶의 무게를 각각 다른 형태로 짊어지고 나오기 때문이다. 김수로와 엄기준도 딱 자기에게 주어진 몫만 소화할 뿐이다.

사실 연극은 사전에 어느 정도는 스토리를 알아놓고 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소 지루한 감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으로 일관하는 공연은 웃기기만 한 연극과 뮤지컬을 봐왔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감내하고 보면서 '내 삶''우리 삶''대한민국 2009년 사회'와 연결시킨다면 본 이후의 느낌은 분명 다를 것이다.

관람을 위한 팁을 하나 덧붙히자면, 예능프로그램이나 코미디 영화에서의 김수로를 생각하고 공연을 보러간다면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연극배우 김수로를 보기위해 간다면 좀더 색다른 맛과 깊이를 느낄 것이다. 9년만에 무대에 서는 배우 김수로는 원래 비극과 고전을 전문으로 하는 탄탄한 연기자였기 때문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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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혼자 갑자기 여행을 떠난다.


누군가에게 살아 있을 이유를 준다.


악어 입을 두 손으로 벌려 본다.


2인용 자전거를 탄다.


인도 갠지스 강에서 목욕한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누군가의 발을 씻어 준다.


달빛 비치는 들판에서 벌거벗고 누워 있는다.


소가 송아지를 낳는 장면을 구경한다.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에게 미소를 보낸다.


특별한 이유 없이 한 사람에게 열 장의 엽서를 보낸다.

 

다른 사람이 이기게 해준다.


아무 날도 아닌데 아무 이유 없이 친구에게 꽃을 보낸다.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다.


- 데인 셔우드 [죽기 전에 꼭 해 볼 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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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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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힘든 일을 겪었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치유될 수도 있는 문제겠지만, 그리고 망각이란 신의 선물로 극복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그 여진은 꽤 오래 갈 힘든 일이였다.


아는 한 분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살면서 죽을 뻔한 일이 없었냐'


당연히 있었다.


"너무나 뻔한 말이겠지만,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살아. 네가 죽을 뻔한 그때 넌 죽었기 때문에"


정말 뻔한 말이였다. 그런데 그 뻔한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말과 글이 살아서 움직일때는 적절한 상황에서 펼쳐질 때다.


너무나 뻔하지만.....앞이 안 보이는 분들을 생각하며 볼 수 있음을 감사하고, 두 다리가 없는 분들을 보며 걸을 수 있음을 감사하고, 말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말을 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지금도 나보다 더 물질적으로 혜택받지 못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내가 적지만 필요한 물질적 혜택을 영유할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너무나도 뻔한 그말....살아있기에 말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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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TAG ,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