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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우선시되는 시대가 확실히 맞다. 이제는 아기를 낳는 것 조차도 돈으로 유혹하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기를 키우는데 돈이 들어가니, 그 돈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준다는 것이다. 얼핏보면 이런 형태면 신혼부부들이 많은 아이를 낳을 것 같다.

일단 서울만 살펴보더라도 강남구는 둘째를 낳으면 100만원, 셋째 500만원, 넷째 1000만원 다섯째 2000만원 여섯째 3000만원을 준다고 밝혔다. 또 영·유아 보육료 지원사업을 확대해 둘째 자녀의 보육료 50% 또는 양육수당 월 10만원, 셋째 이상 자녀의 보육료 100% 또는 양육수당 15만원 씩 지급하기로 했다. 중구는 지난 2007년부터 둘째 20만원, 셋째 100만원, 넷째 300만원, 다섯째 500만원, 열째 이상부터는 3000만원을 양육비로 지원해왔다. 성동구도 내년부터는 4자녀 이상 가구에 100만원이 넘는 장려금을 지원하도록 6월 초 조례를 개정키로 했다. 다른 지방의 경우에는 서울보다는 적지만, 일부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강남에 사는 부부가 3000만원을 받기 위해 여섯째를 낳는다? 일단 이러한 정책부터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현 시점에서 젊은 신혼부부들이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은 단지 돈의 문제 뿐만은 아니다.

어느 순간 물질적인 부분까지 아니라 정신적인 여유까지 잃어버린 세상이 되어버렸고, 제 한몸은 물론 부부끼리도 뭔가 편안한 삶을 (돈이 많다고 편안한 것은 아니다) 추구하는 행태가 사라져버렸다. 그 상태에서 아기까지 만들 여유가 있을리라 생각되는가.

아해 주변에 부부가 함께 벌어 연봉이 2억원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 아이가 없거나, 한 명정도 뿐이다. 이유를 물어보면 간단하다. 가정이라는 최소 구성원이 살만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내 영혼의 요람이었던 가족, 가정이라는 최소 단위는 이제는 외부로부터 내가 보호해야 하며, 사회의 불안요소와 더불어 삶의 불안요소까지 똑같이 내포하고 있는 집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가정 파괴의 여러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돈을 준다고 애를 낳는 것이 아닌, 애를 낳을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물질적 한계로도 충분히 아기를 키울 수 있고, 아이가 자라나는데 있어서 한 인간으로 정상적으로 클 수 있는 사회 환경이라고 판단되면 돈 안줘도 아기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자라는 내 조카들조차도 이 세상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다. 그리고 과거 아이들이 자라나는 환경에서 부모들이, 어른들이 눈맞춰 주며 고민을 나누었던 시대와 달리 복잡하게 이뤄진 현 시대에서 과연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춰 그들과 고민을 나눌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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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바쁜 와중에 한번쯤 이것을 생각한다. 특히 스스로의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왜 자신이 사는지,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조차 고민할 여유조차 박탈당했다면 어떨까. 고통 그 자체를 인식조차 못하는 상황이 일상화되었다면 말이다.

현재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밑바닥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러시아의 막심 고리키가 1902년 발표한 희곡으로 더럽고 어두운 싸구려 여인숙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여러 인간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젊은 도둑, 한때 지식인이었지만 이제는 사기꾼이 된 인간, 성공하고 싶어하는 수리공, 망한 귀족이 남작, 순수한 아가씨 나타샤 등 현대 사회의 거대한 모순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존엄'을 잃고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이번 공연은 1900년대 우울했던 러시아를 2009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창조적이고 높은 수준의 작품을 보여주고자 했다.

작품이 주는 울림은 크다. 단순히 밑바닥 삶을 그려서 그런 것이 아니다. 희망과 현실 사이에 존재한 묘한 연결고리와 괴리감이 공존해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삶이 변화되는 것도 아니지만,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가졌을 때 가지는 기쁨은 잠시 뿐이고 그 희망이 박탈당했을 때 느끼는 삶의 수렁은 이전보다 더 깊이 들어간다. 사람들은 연극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희망이 헛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 헛된 희망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관객 개개인이 공연 직후 가져가야 할 보따리의 크기는 달라진다.

연극 '밑바닥에서'가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된 이유는 사실 젊은 도둑 '페펠'을 최근 예능프로그램에서 주목받는 김수로와 뮤지컬 배우이자 연기자인 엄기준이 나온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연극에서 주연과 조연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등장인물 모두가 삶의 무게를 각각 다른 형태로 짊어지고 나오기 때문이다. 김수로와 엄기준도 딱 자기에게 주어진 몫만 소화할 뿐이다.

사실 연극은 사전에 어느 정도는 스토리를 알아놓고 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소 지루한 감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으로 일관하는 공연은 웃기기만 한 연극과 뮤지컬을 봐왔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감내하고 보면서 '내 삶''우리 삶''대한민국 2009년 사회'와 연결시킨다면 본 이후의 느낌은 분명 다를 것이다.

관람을 위한 팁을 하나 덧붙히자면, 예능프로그램이나 코미디 영화에서의 김수로를 생각하고 공연을 보러간다면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연극배우 김수로를 보기위해 간다면 좀더 색다른 맛과 깊이를 느낄 것이다. 9년만에 무대에 서는 배우 김수로는 원래 비극과 고전을 전문으로 하는 탄탄한 연기자였기 때문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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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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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말일지 모르지만 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집권 3개월만에 이정도로 민심을 화나게 하는 이명박 정부를 보면 한심하기도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섰다. 전 세계가 경쟁관계로 들어서고 정부과 국민이 똘똘 뭉쳐야 하는 상황에서 그 동안 사실 우리는 안이했다.

평화롭고 자유로움은 늘 즐기면 좋겠지만,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사람들은 진지함을 잃어버리고 생각하기 귀찮아진다. 정부가 뭘 잘못해서 욕을 해도 잘 들어먹히고 동시에 대통령 이하 정부가 무게만 잡는 권위가 없다보니 편하다. 그런데 이 편안함은 바로 나태함으로 이어지고 내가 무엇인가를 찾아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된다.

아마 김대중-노무현 정부이후 또다시 비슷한 정부가 들어섰다면, 즉 제대로 된 민주주의와 자유를 배우지 못한 상황에서 어질어질한 상태까지 간 국민이 아마 그로기 상태가 되어 국가대 국가의 경쟁에서는 밀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나태함을 일깨어주고 있다. 아주 제대로 말이다. 일단 3개월만에 국민들의 마음을 잘 뭉치게 했다. 그것도 과거처럼 20~30대처럼 젊은 층뿐만 아니라 10대의 어린층까지도 길거리로 나오게 했다. 4년 후, 그리고 5년 후 선거에 참여해 정권을 평가할 세대를 길거리로 끌어낸 것이다. 사회에 대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세대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대해 새롭게 느끼게 해줬고 중국에 대해 더 새롭게 느끼게 해줬으며 국가가 정치를 잘못하면 국민에게 어떻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제대로 알려주고 있다.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으며 대통령의 결정 하나가 국민들을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지도자 하나가 국민들을 어떻게 불안하게 만드는지 제대로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은 대통령이 만만하다보니 이야기를 잘 들어주다보니 넘어갈 일이, 이제는 귀 틀어막은 지도자 만나서 답답한 상황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나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계산을 하게 된다. 내가 잘못 투표하면 어떤 재앙이 일어나는지도 보고 있다.

지도자에 대해, 선거에 대해, 자유에 대해, 권위에 대해, 대화에 대해, 사회에 대해, 정치에 대해 국민들에게 제대로 이명박 정부가 공부시켜 주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를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3개월이면 족하다. 앞으로 4년이상을 더 공부시켜주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이제 적당히 하고 공부시킨 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제까지 국민들의 한숨을 바탕으로 국가를 이끌어갈 생각인지 궁금하다ㅣ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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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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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 아는 선배와 이야기 중 선배가 나에게 던진 질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를 아는 이들은 사실 이 질문은 나에게 잘 안 던진다. 직업상(?) 어쨌든 세상 돌아가는 것과 이래저래 살 붙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어느 정도 알죠"라고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어느 정도'의 폭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꽤 건방(?)진 마음으로 말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아는 폭의 한도가 다른 사람보다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배는 나의 대답에 대해 "하긴"이라는 답을 보냈지만 그 답이 내 속을 개운하게 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답답함을 느꼈었다.

며칠 전 이번에는 후배가 물어봤다. "선배는 세상 돌아가는 거 잘 알아요?"

이 후배 역시 나를 잘 아는 편이다. 질문의 의도도 잘 안다. 그래서 난 대답했다. "아니 전혀 몰라"

내 믿음과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지금 하는 일과의 괴리감.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방향에 대한 상실감이 그 후배에게도 느껴졌던 모양이다. 탁상공론을 싫어하던 내가 탁상공론을 하고 있었고, 세상을 아래로 보고 있던 이들을 경멸하던 내가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몇년 전과 직업은 똑같은데 말이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신문에 나오는 뉴스들을 잘 안다고 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발 빠르게 투자를 해서 돈을 벌고 지식을 쌓고 글로벌한 모습을 갖췄다고 해서 세상을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삶에 대해 내가 이야기하지 못함을, 안함을 느꼈던 순간부터 난 세상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선배를 만나 "어느 정도 알죠"라는 건방진(?) 말을 했을 때 답답함을 느낀 것은 사실 건방지다고 느껴진 스스로의 모습보다도 앞으로 그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었다고 지금 생각한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에너지를 공유했던 때는 덜 답답했다. 그런데 지금처럼 서로 소비하는 만남이 잦을 때는 스스로가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세상에 존재감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감없는 내가 느끼는 세상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세상 소식을 많이 듣기만 하고 생각을 안하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고등학교 선생님의 말이 새상 다시 떠오른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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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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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후배가 갑자기 물어봤다.

"선배 시사저널 사태가 뭐에요? 그리고 왜 시사저널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옹호하죠?"

원 성격대로 하자면 1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런 질문을 던지는 후배에게 "너 뭐 보고 사냐"라고 핀잔을 주었겠지만, 자기 일에만 묵묵히 몰두하고 있는 녀석이 '시사저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도리어 궁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미디어다음 블로그뉴스에 시사저널에 관한 뉴스가 항상 배치되어 있었고 오늘처럼 볼드처리되어 시선 집중하게 만드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삼성과 금창태 사장이 '진짜' 언론을 하나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라는...

미디어다음의 의도적인 배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사저널 기자들이 편집국을 블로그로 옮기면서 기자 개개인들의 물질적인 지원은 끊어졌는지 몰라도 적어도 온라인상에서는 파워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저널이 그동안은 한국의 여러 주간잡지 중에 하나였지만 (물론 언론을 아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다르겠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지금은 온라인상에서 네티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유일한 잡지가 된 것이다.

오늘 시사저널 기자들이 퇴직금을 모아 새로운 매체를 만들겠다는 뉴스를 봤다.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자본으로부터 독립은 어려운 일이지만, 정말 괜찮은 매체가 나와서 괜찮은 사회 만들기를 바라는 건전한 자본들이 몰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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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