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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제주도 성산일출봉. 평일의 경우 한국 관광객은 당연히 없고, 대신 중국 관광객을 내려놓고 대기하는 버스가 가득 있어야 할 주차장이 한가하다. 당연히 깃발도 보이지 않았다.

성산일출봉 올라가는 길 역시 한산했다. 성산일출봉은 원래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이 하나였다. 그러나 중국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원래 길은 올라가는 길로 하고, 옆쪽에 내려가는 길을 따로 만들었다. 중국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길이 정체됐고, 이를 해서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날을 달랐다.

수년 전 북적대지 않았던 성산일출봉으로 돌아간 것이다.

실제 이날 김포에서 제주 가는 비행기에는 중국인들을 보기 힘들었고, 관광지 역시 간간히 중국어가 들리긴 했지만 전처럼 시끄러운 목소리는 없었다.

제주도가 사드 영향을 직접 받을 것이라는 뉴스를 많이 접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물론 한국인으로서 이렇게 번잡하지 않게 제주 여행을 즐겨본 것도 오랜만이라 반갑지만 확실히 지역 경제는 타격을 입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앞서 포스트에서도 말했지만 중국의 눈치 여부를 떠나 사드가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즉 미국과 국방부가 주장하듯이 북한을 견제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미국의 이익을 위한 MD 전략에 놀아나는 것인지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무능하고 바보같은 닭근혜 정부 관계자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뛰는 인간들이 정책 결정자로 있으니 신뢰가 가지 않는다.

한산해서 개인적으로 좋은 제주지만, 엉뚱한 피해로 이래저래 고생이 많다.

- 아해소리 -

Posted by 아해소리

적잖은 해외 여행 및 출장을 다니면서 1순위를 꼽는 곳이 스페인이다. 그 다음이 오키나와 였는데, 아시아권에서는 적어도 베트남 달랏으로 순위가 바뀌었다. 호치민에서 출발해 비행기로 40여 분 정도 가면 도착한다. 당시 비행기 비용은 우리 돈으로 약 3만원 정도였다.

 

공항에 도착하면 써늘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해발 1600m며 1년 내내 16~21도 사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시원하다는 느낌이었지만, 베트남 달랏 사람들은 추운지, 다들 옷차림이 두껍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바지 반팔 복장은 거의 외국인들인 듯. 그러나 밤에는 대략 쌀쌀하다.

 

달랏 시내에서 만남의 광장은 주로 롯데리아 앞이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시장은 마치 과거 야시장을 느끼게 한다. 온갖 음식에 다양한 기념품들까지 볼거리가 많다. 거기에 베트남답게 싸다. 그리고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더욱 다양하다. 이곳은 독특하게 편의점이 없다. 전통의 슈퍼마켓이 곳곳에 있다.

 

그리고 스쿠터를 탈 수 있다면 달랏은 천국이다. 중심지가 복잡해서 그렇지, 주변 관광지들은 스쿠터로 모두 이동 가능하다. 그리고 한가하다. 개인적으로 2박3일 정도 있었지만, 미리 알았다면 더 오래 머물면서 느긋함을 즐길 동네였다. 참고로 여기는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 당시 프랑스인들의 휴가지로 개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들이 예쁘다.

 

 

 

 

호치민에서 보통 오후 늦게 출발해 저녁에 도차하면 이 같은 광경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시내까지는 택시나 버스를 타는데, 택시비가 만만치 않다.

 

 

 

 

 

 

 

달랏 시장이다. 밑에 사진이 더 있지만 밤 늦게 도착해 첫 날은 굉장히 신기했다.

 

 

 

 

 

 

아해가 묵었던 달랏 사콤리조트. 골프를 칠 것이 아니라면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건물도 예쁘고 안에도 잘 되어 있는 곳이지만, 달랏 시내와 멀다. 그러다보니 택시를 부르거나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야 하는데, 셔틀버스 시간을 놓칠 수 있다. 게다가 여기 묵는 사람들은 대개 가족 단위나 단체 여행객이 많아서 사실 셔틀버스를 이용을 잘 안한다. 묵는 동안 3번 이용했는데, 거의 나 혼자에 직원들만 탔다. 다소 뻘쭘함이.

 

 

보통의 달랏 날씨다. 왼쪽 길로 올라가면 여러 호텔들과 시장 뒤쪽으로 바로 향하고 가운데 길은 시장으로 향하는 곳이다. 오른쪽에 롯데리아가 보인다.

 

 

 

 

 

 

 

 

 

달랏 자수 박물관의 모습이다. 여기는 사실 제대로 둘러보려면 반나절은 잡아야 한다. 대충 봐도 몇 시간 걸리니. 위의 사진은 몇개만 올린 건데, 실제 자수를 놓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역사도 쭉 나열되어 있다. 의약방도 볼 수 있다. 진짜 어떤 자수는 사진과 같은 느낌도 받았다. 입장료를 받는다.

 

 

 

 

 

 

 

 

랑비에 산은 지프를 타고 올라간다. 물론 유료다. 전설이 있긴 한데, 그건 검색해 보면 나오고. 그보다도 전망이 좋다. 원래 고도가 높은 도시인데, 여기에서 또 올라가니 구름이 눈 앞에서 지난다. 계속 멍 때리고 보게 된다. 독수리는 손에 올려놓고 사진 찍을 수 있게 해놓는데 그닥..

 

 

 

 

 

 

 

 

 

 

크레이지 하우스. 말 그대로 미친 집..보는 것이 1시간 가까이 걸린다. 호치민 시절 마지막 수상의 딸 당 비엣이 건축을 시작해 아직까지도 만들고 있다. 스페인 가우디 느낌이 물씬. 아무튼 그냥 쭉 건물 위로, 옆으로 걸어다니면 된다. 내부에 게스트 하우스도 있다.

 

 

달랏 성당.꼭대기에 수탉모형이 있어서 수탉성당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달랏에서 가장 큰 성당이고 프랑스인이 남긴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달랏도 하교 시간이 되면 부모들이 오토바이로 아이들을 태우러 온다. 강남 학원 끝나는 시간이 떠올랐다는..

 

 

 

 

 

달랏 뒷골목..집들이 예뼈서 그냥 돌아다님..

 

 

 

 

 

이게 제대로 된 달랏 시장 전경이다. 정말 복잡하고 정말 재미있다.

 

 

달랏에서 본 나이트 클럽...ㅋ

 

 

 

 

달랏 시장에는 호텔들이 많다. 위에서 말했듯이 외곽 말고 이곳에 잡아야 돌아다니기 편하고 아침에 나름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

 

 

달랏 시장에서 저녁. 쌀국수가 길거리에서 먹었는데 굿..1500원. 그리고 밑에 피자 같이 생긴 것은 천원.

 

 

 

 

시내로 나와 신투어리스트로 달랏에서 무이네로 이동. 신투어리스트는 지도보다는 묻는 것이 낫다. 조그맣게 위치해서 잘못하면 지나칠 수 있다. 그리고 시간 맞춰 가는 것이 중요. 일찍 가봐야 소용도 없다. 무이네 가는 길은 나중에 설명.

 

 

달랏은 베트남인들이 신혼여행으로 많이 온단다. 그도 그럴 것이 시원하고 볼거리도 많다. 아해야 관광보다는 휴식을 중심으로 여행을 갔기에 몇 군데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꽃의 정원부터 왕의 휴가지, 기차역, 달랏국립대 등등 볼거리가 넘친다. 스쿠터를 잘 타면 3박4일 정도 잡고 넉넉하게 놀다오면 관광과 휴가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저녁에 달랏 호수에 커피 한잔 하고 앉아있으면 진짜 여유롭다.

 

- 아해소리 -

 

2017/03/07 - [일상에서의 생각] - 베트남 남부 여행 (호치민)

Posted by 아해소리

조금 오래된 여행 이야기다. 여기에 여행 글을 써본 것이 얼마인지. 호치민에 도착해 2박 3일을 보낸 것으로 시작해 달랏, 무이네를 거쳐 다시 호치민으로 온 여행이다. 호치민에서 달랏은 비행기로, 달랏에서 무이네는 입석 버스로, 무이네에서 호치민은 슬리핑 버스로 이동했다. 대략 10일 정도 있었다.

 

이번 포스트는 그 중 전반기 호치민이다. 사진 설명과 대략의 팁 정도만 쓸 예정이다.

 

 

 

공항에 도착하면 이렇다. ^^

 

 

 

숙소 주변..다행히 벤탄 시장 주변이었다. 호텔은 루비 리버 호텔인데, 버스터미널과 가깝지만, 굉장히 좁은 편이다. 모텔 수준이다.

 

 

 

 

다른 곳으로 이동을 생각하고 여행을 갔다면 도착하자마자 이동 편에 대한 버스 티켓이나 가이드 여행 티켓을 미리 끊어놓는 것이 좋다. 베트나은 주로 신투어리스트를 이용하는데, 지점도 잘 되어있고 여행자 거리에는 대개 위치해 있어서 찾기 편했다. 그리고 일단은 여행자들을 많이 대해봐서 대충 이야기해도 다 알아들음

 

 

 

돈을 지불하고 나면 이런 것을 줌. 난 달랏에서 무이네, 무이네에서 호치민으로 오는 버스 티켓 끊음 (사이공이라 되어 있는 것이 호치민이다) 그리고 메콩강 투어를 끊음. 메콩강 투어 종류도 여러가지고, 다른 투어도 있으니 미리 알아가는게 좋다. 금액은 47만7천동. 우리 동으로 2만4천원 정도..싸다. 그리고 이 티켓은 여행 내내 가지고 다니는 게 좋다.

 

 

 

 

 

벤탄시장에서의 첫 쌀국수. 우리 돈으로 1500원쯤이었다.

 

 

 

 

호치민 노트르담 성당을 뒤에서 찍은 사진이다. 정문 열리는 시간이 있어서 일단 뒤로 헤맴

 

 

호치민에서 유명한 하이랜드 커피. 달다...--;;

 

 

그냥 호치민 거리다.

 

 

호치민 중앙우체국. 여기서 실제 편지를 보내도 된다...

 

 

중앙우체국 내부. 여러가지를 판다.

 

 

 

앞에서 본 노트르담 성당

 

 

성당 주변에서 결혼 사진 찍고 있다. 그런데 그 옆의 노숙자 삘은..--;;

 

 

호치민 대통령궁 통일궁

 

 

 

대통령궁 내부다. 뭔가 행사가 열린 공간인 듯

 

 

 

 

 

 

 

호치민 전쟁기념관....호치민은 박물관을 비롯해 어딜 가든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본다. 들어가보면 아시아인보다는 백인이 더 많다. 뭐랄까. 아무튼 그들도 보면 한숨을 쉬긴 하는데, 썩 와닿지는 않는다. 아무튼 꼭 한번 들려봐야 하는 곳이다. 한국인들의 베트남 전쟁 참전 관련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벤탄시장 광장에서 둘러본 거리다. 저 멀리 포2000이 보이는데,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다고 해서 유명한 곳이다. 그렇다면 맛은.......베트남에서 쌀국수를 7차례 먹었는데, 중급이다. 그렇다고 맛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베트남 내 쌀국수들끼리 경쟁한다고 했을 때 극찬할 정도는 아닌 듯 싶다.

 

 

벤탄시장이다. 무조건 가봐라. 그러나 의외로 살 것은 없다..그냥 둘러보기 좋은 곳.

 

 

벤탄시장 주변. 어둠이 내리고 벤탄시장이 문을 닫으면 여기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아래 사진들로 보면 노점상이 생긴다. 그런데 그 일사불란함이 놀랍다. 딱딱 치우고 끌고와서 설치하고 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베트남은 전쟁의 이야기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나라다. 미술관도 이런 류의 그림들이 많다.

 

 

 

 

 

 

 

 

택시 타고 공항 가는 길인데...친절하게 한글로 써 있다. ㅋ

 

 

베트남에서 2박 3일을 지내다 느낀 것은 앞서도 말했지만,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친절하다. 그러나 어디나 마찬가지로 곤조 부리는 인간들도 있다.

 

몇 가지 팁을 거론하면

 

첫째는 절대로 길 건널 때 뛰지 마라. 천천히 걸아가면 차든 오토바이든 다 피해간다. 뛰면 차나 오토바이가 예측을 못해서 사고날 수도 있다.

 

둘째는 마사지 등을 가서 팁을 줘도 되지만 가능한 주지 마라. 한국 사람들이 팁 문화 다 버려놨다. 마사지가 30만동. 우리 돈으로 1만 5천원정도 하는데 한국 사람에게만 팁은 10만동 즉 5천원을 요구한다. 중국인 등에게는 절대 팁 요구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한글로 팁 주지 말라고 써 있다.

 

셋째는 호텔은 신중하게 잡아라 우리 나라 모텔 수준이긴 하지만, 방음이 안되어 있어서 밤에 잠 못 이룰 수 있다. 첫번째 호치민 방문 때는 괜찮았는데, 두번째 호치민 방문 때 잘못 잡아서 밤새 소음에 시달렸다. 한국 모텔이 방음이 더 잘 되는 느낌이다.

 

넷째는 구글 맵과 구글 번역기는 정말 필요한 존재다. 이 둘만 가지고 있어도 왠만한 거 다 해결한다.

 

 

- 아해소리 -

 

두번째 포스트로 이어진다.

 

 

Posted by 아해소리

여러 자리에서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직업인지라 (물론 지금은 내 글을 자주 쓰기보다는 주로 다른 이의 글을 고치고 있다) 종종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곤 한다. 질문의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그럼 비슷하게 되묻는다.

 

왜 글을 잘 쓰고 싶은데요?”

 

이 질문에 자기 생각을 담아 대답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잘 쓰고 싶다기보다는 형식에만 매달린다. 그냥 글 잘 쓰는 사람이 멋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글을 어떻게 접근하냐에 따라 그 사람의 글의 무게와 형식이 결정된다고 배워서인지, 고개를 끄덕이긴 어려운 답이다.

 

물론 글을 어떻게써야 잘 쓴다는 것은 답이 없다. 지름길도 없다. 그냥 계속 써야 한다.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엉덩이 붙이고 계속 쓰는 사람을 이길 글쟁이는 없다. 이는 진짜다. 과거 한동안 다른 일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한 기간이 꽤 길었다. 물론 이 기간 동안에도 다른 이들의 글을 고쳐주기는 했다.

 

그런데 내 글을 쓰려 노트북을 켜는 순간, 종이를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함을 느꼈다. 쓰고 싶은 내용은 있는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내 글을 잠시 잊었던 것이다. 그 감을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그 경험은 꽤 충격이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계속 써야 한다는 것은 진리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어떻게 접근하냐에 따라서 그 의 방향은 달라진다. 여기서는 글을 잘 쓰는 방법이 아니라, 글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글은 이고 권력이다. 글이 이 자리에서 내려온 것은 인류사 이후 한번도 없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 하나로 사람들은 권력을 가졌고, 변화를 시도했다.

 

과거 글은 권력자의 소유물이었다. 때문에 글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소유가 가능했고, 일반 대중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 중세 서양의 경우 문맹률이 90%를 넘었다. 이 당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층은 집권층과 종교인들뿐이었다. 이들은 정보를, 사고를 자신들끼리 공유하고, 전달했다. 그 안에서 개인과 조직을 발전시켰으며, 통치 기반을 공고하게 만들었다.

 

실상 피지배층이 글을 배웠다고 해도 쓸모가 없었다. 배운 글로 읽을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배층끼리 공유되고 사유된 책이 피지배층에게까지 갈 통로는 없었다. 때문에 피지배층은 뭔가를 고민하고 논의할 때 오로지 구전으로만 나누고 전달했으니, 탄탄한 이론적 기반이나 통합된 지식이 있을 리 만무했다. 중세시대 종교에 의한 마녀사냥이나, 전쟁이 손쉽게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도, 피지배층에게는 반박할, 반대할 이론 체계나 사고가 없었고, 지배층은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성경에 기반한 신의 목소리라는 말로 정당화 했다. 글을 모르니 읽을 수 없고, 설사 읽을 수 있다 해도 공유할 수 있는 성경과 책이 없으니 피지배층은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이는 이 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자는 그 수만 어마어마하기에 생업에 몰두하는 피지배층이 글을 배울 시간도,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서양과 마찬가지로 읽을 책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양반들 사이에서도 누군가 뛰어난 책을 구해오면 필사해 읽을 정도였으니, 피지배층이 이를 소유할 수도 없고, 읽을 방법도 없었다.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가 활자기를 만들어낸 이후인 르네상스 시대 이후 변한다. 문맹률 역시 60%로 떨어졌고, 성경을 비롯해 책이 대량으로 인쇄돼 전파되기 시작했다. 종교계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성경은 자신들만이 해석할 수 있기에 왜곡 역시 시킬 수 있었는데, 피지배층이 진실을 알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권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선에서도 세종이 한글을 만든 이후, 변화가 감지됐다. 한자를 무기로 한 양반들의 권력의 변화가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든 서양이든 이가 급격한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글을 읽는다는 것과 이를 활용할 책 즉 전파 수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때문에 종이가 일반화되어 활자로 된 매개체(, 신문)가 일반화되기 전까지도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권력을 상징했다.

 

그런 권력의 균열이 제대로 일어난 것은 아마 인터넷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글을 쓰고, 누구나 읽을 수 있으며 온갖 정보를 공유한다. 개인이 한 조직을 넘어서는 권력을 가지기도 하고, 대중에게 막강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것이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스펙트럼을 넓히기는 했지만, 그 기반에는 글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러니하게 누구나 글을 쓰고 읽을 수 있지만, ‘제대로글을 쓰고 읽는 이들이 적어지고 있다. 글을 읽는 이들 대신 보는이들이 늘었다.

 

글이 힘을 가질 때는 그 글이 타인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때다. 르네상스 시대 이전과 조선 시대의 글은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사고는 글로 정리됐고, 그 글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책으로 전파돼 논의와 토론으로 이어졌으며, 결과물인 이론과 정책이 도출되어 피지배층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지금의 글은 아니다. 논의와 토론을 이끌어내지 못할뿐더러, 그런 글은 도리어 읽을 수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글을 보고있으며, 파편화된 짧은 글로 사고를 정립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글은 다시 권력이 되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 시대에 글은 다시 권력화의 중심으로 돌아온 것이다. 10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읽고 쓰는 이들은 줄어들고 있다. ‘진짜가 귀한 시대가 온 것이다. 글은 쉽지만, 쉽지만은 아닌 존재인 이유다.

 

아해소리 -

Posted by 아해소리

 

 

 

 

원래 블로그에 이런 글 잘 안 올리는데...

 

 

이사짓센터인 백년익스프레스 안산점... 이용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대표 번호 : 010 902x 55xx - 일부 번호는 x처리..하지만 저 번호 들어간 이삿집 업체는 비추) 

 

옆집 이사하는데 큰 차량 끌고와서 부모님 집 감나무 가지를 아직냄. 뭐 그럴 수 있다. 제대로 사과하면...그런데 부모님께 제대로 사과도 안함...부모님 112 부름...그런데 112 불렀다고 또 험한 말...결국 내가 나섰는데도, 자기 잘못 없다고....나무 부러진 것에 대해 사과했는데, 부모님이 안 받아줬다고.. 대충 좌석에 앉아 사과하는게 사과?

현장에 있던 다른 직원 이사 끝나고 "죄송하다. 저 직원이 어쩌구저쩌구..."하면서 전화번호 적어가면서 "사장님이 연락드려 사과할꺼다"라고.......어머니께는 "사장이 정중하게 사과하면 정중하게 넘어가자"라고 이야기하고 서울로 올라옴

오늘 오전 연락이 없었다기에 사장에게 전화. 여자가 받더니 자기가 사장이라며 "사과했는데 안 받는데 어쩌라는거냐. 그런데 왜 112 불렀냐"

나 : 현장에 있었냐?

사장 : 있었다. 사과를 안 받는데 어쩌라는거냐.

나 : 그런데 왜 나서지 않았냐. 책임자가 사장 아니냐?

사장 : 나중에 와서 이야기 들었다.

나 : 현장에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본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냐

사장 : 나중에 와서 봤다. 

나 : 봤다는 거냐, 들었다는 거냐..아무튼 현장에 있었는데 왜 책임지지 않았냐

사장 : 나무가지가 길로 나와 있는데, 그것도 문제 아니냐. 시청에 이야기해서 잘라버리겠다.

나 : 그게 문제라고? 그럼 그렇게 해라. 하지만 잘라진 나무에 대해 손해는 어떻게 할 것이냐

사장 : (끊어버림)

세상에는 제대로 된 사과 하나면 끝날 일을 굉장히 크게 부풀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리고 백년익스프레스 안산점 사장이 착각하는 게 있다. 사과가 문제가 아니다. 남의 집 나무를 훼손시키고 그대로 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후 어떻게 하겠다는 말 조차도 없었다.

 

애초 우리 부모님의 초점은 사과였는데, 그게 이 사장은 뭔가 착각을 했나보다. 그 초점이 전부라고 말이다. 사실 나무를 훼손시킨 것이 초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줘야겠다.

 

- 아해소리 -

Posted by 아해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