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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이야기이고, 어느 커뮤니티에 있는 이야기다. 잔잔한 느낌을 받아서 블로그에 옮겨본다.

 

 

 

 

여느 때와 같이 콜택시 요청을 받고 해당 주소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도착해서 경적을 울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어요. 또 한 번 경적을 울렸지만,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었죠.

 

이 손님이 그 날 교대 전 마지막 콜이었기에 저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얼른 포기하고 차를 돌릴까도 생각했죠. 하지만 저는 일단 기다려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초인종을 누르자, 노쇠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손님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마침내 문이 열렸고, 적어도 90살 이상 돼 보이시는 작고 연로하신 할머니 한 분이 문가에 서 계셨죠. 손에는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 계셨습니다.

 

당시 문이 열린 틈으로 집안이 살짝 보였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집 안에는 사람 산 흔적이 싹 지워진 듯했어어요. 모든 가구는 천으로 덮여 있었고, 휑한 벽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어요. 단지 사진과 기념품이 가득 찬 상자 하나만 구석에 놓여 있었죠.

 

기사 양반, 내 여행 가방 좀 차로 옮겨줄래요? 부탁해요.”

 

할머니의 요청대로 저는 가방을 받아들고 트렁크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돌아가 팔을 잡고 천천히 차까지 부축해 드렸죠.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씀에 저는 아니에요. 모든 승객을 제 어머니처럼 대해야죠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미소 띤 얼굴로 굉장히 친절하시네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택시에 탄 뒤, 그분은 목적지의 주소를 알려주며 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지 말아 달라고 하셨습니다.

 

... 그럼 목적지까지 가는 지름길이 없는데요... 시내를 통과하지 않으면 많이 돌아가게 될 텐데.”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저만 괜찮다면, 급할 게 없으니 돌아가도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덧붙이셨죠.

 

지금 요양원에 들어가는 길이랍니다. 사람들이 마지막에 죽으러 가는 곳 말이죠.”

 

살짝 놀란 저는 속으로, '절대 가족을 남겨두고 먼저 가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의사가 말하길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미터기를 껐습니다.

 

어디 가보고 싶은데 있으세요?”

 

그 후 두 시간 동안, 할머니와 함께 저는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분은 젊은 시절 리셉셔니스트로 일했던 호텔을 보여주셨고, 함께 시내의 여러 장소를 방문했어요. 이제는 고인이 된 남편과 젊었을 적 함께 살았던 집을 비롯해 소싯적 다녔던 댄스 스튜디오를 보여주기도 하셨죠.

 

어느 골목에 다다르자, 천천히 가달라고 말씀하신 할머니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셨어요.

 

우리는 한참을 돌아다녔죠. 그러다 할머님께서 말씀하셨어요. “

 

이제 피곤하네요. 제 목적지로 가 주세요.“ 최종 목적지인 요양원으로 향하면서 우리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도착한 요양원은 생각보다 작았어요. 도로 한 편에 차를 세우니 두 명의 간호사가 나와서 우리를 맞이했죠. 그들은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웠고, 전 트렁크 속에 두었던 여행 가방을 꺼내 들었죠.

 

요금이 얼마죠?”

 

그녀는 핸드백을 열며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0원이에요.”

 

그러자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죠. “그래도 이 사람아, 생계는 꾸려나가야지.”

 

저는 웃으면서 답했습니다. “승객은 또 있으니까 괜찮아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전 할머니를 꼬옥 안아드렸고, 그분 역시 절 꽉 안았어요.

 

이 늙은이의 마지막 여행을 행복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할머니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악수한 뒤, 할머니가 건강하시길 빌며 저는 택시를 몰고 길을 떠났습니다.

 

교대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전 정처 없이 차를 몰고 도시를 돌아다녔죠. 누구하고도 만나거나 말 붙이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오늘 이 손님을 태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분 집 앞에서 경적 한 번에 그만 포기하고 차를 돌렸다면요?

 

그날 밤 일은 인생을 살며 제가 해온 것 중에 가장 뜻깊은 일 중 하나였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삶 속에, 우리는 종종 크고 화려한 순간에만 집중합니다. 더 크게, 더 빨리, 더 멀리.

 

출처 : 인생의 가치-뉴욕의 한 택시 기사의 이야기|작성자 은발의 소녀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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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9월 초 제주 가족여행을 갔다. 어느 분의 추천으로 알게된 무지개  렌트카. 그냥 있는 그대로 쓴다.

 

K5를 빌리게 됐는데, 무선으로 여는게 아니라 일일이 키를 꽂고 돌려야 한다. 2004년도에 산 내 차도 이러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황당. 차를 타신 아버지께서 "이거 오래된 차구나"라며..

 

이곳저곳 기스가 나고 세차도 안되어있다. 대충 빌려주는 마인드. 얼마나 많이 외관이 손상되었으면, 체크하고도 내가 불안해서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딴 소리할까봐. 거꾸로 생각하면, 내가 어디서 긁어도 이 회사는 모를 것 같다.

 

게다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밞았는데도 차가 밀린다. 언덕에 주차하면 뒤 차 박을 것 같기도 하고.

 

밤에는 더 황당했다. 전조등 한 쪽이 고장났다. 헐....... 전화하니 수리하는 사람 보내서 바꿨다. 그리고 영수증 처리후 나중에 청구하란다.

 

반납하는 날.

 

주차비 1천원을 더 내라고 한다. 참고로 차 나갈 때 내가 2000원 냈다. 내가 늦어서 어쩔 수 없이 2000원 낸 것이라 한다. 그럼 반납하는 날 일찍 왔는데, 이건 안 내도 되지 않냐고 하니, 웃으면서 그건 다르단다.

 

즉 직원들의 태도도 엉망이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비추다. 개.인.적.으.로....뭐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추가로...검색해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개판 렌트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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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해운대에서 며칠 전 조그마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몇몇 기자들과 기획사 매니저들이 술 자리를 하는 포장마차에 대형 영화 투자/배급사 투자 담당이 뒤늦게 취한 상태로 합석해 다소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이다. 분위기가 흐려지자, 원래 착석해 있던 이들은, 다른 자리로 옮겨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 담당자는 지속적으로 거부했다. 그런데 이 투자 담당자이 기분이 상했던지 갑자기 자신이 받은 기자 명함을 찢어서 던져버렸고, 착석해 있던 이들이 어이없어 하자 자신의 명함도 찢어서 던지고 가버렸다.

술 취한 이들이 많은 영화제 해운대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소소한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상황이 '무명' 혹은 '독립영화' 제작을 하는 감독들의 푸념과 오버랩됐다.

과거 한 독립영화 감독은 저예산으로 무명의 배우들을 출연시켜 어렵게 영화를 제작한 이유에 대해 "투자 배급사들이 시나리오를 아예 거들떠보지 않아서, 언제 내 영화가 만들어질지 불안했다. 그래서 사재 털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또다른 영화 감독 역시 "기업을 운영해 본 경험으로 나름대로 사람을 대하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다고 생각했다. 거래처 사람들에게 어떻게 호감을 사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 쪽은 아예 다르다. 단순한 갑을 관계가 아니다. CJ, 롯데, 쇼박스 등은 슈퍼 갑이다. 시나리오를 거들떠 보지 않음은 물론, 연락조차 안온다. 결국은 사재 털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물론 이들 제작 배급사들도 많은 이들을 상대해야하기에, 그들의 애로사항을 모르는 바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검토하고 사람을 만나고 다시 흥행 여부를 따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태도고 예의다. 위에서 말한 투자 담당은 얼마 안 있어 해당 기자에게 사과를 하러 왔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며, 만일 담당자가 기자가 아니라 힘없는 감독이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를 하기보다는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조그마한 술자리에서 너무 크게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무명의 감독들이 거대 투자사에 대한 한숨 소리가 계속 들려 끄적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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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트가 조금 안 맞았다. 김해 봉하마을에 가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 내용이야 노 전대통령 홈페이지에 가면 들을 수 있고 사진도 많이 올라와있어서 찍은 사진을 특별히 올릴 이유는 없을 듯 싶다.

(사람들이 노 전대통령에게 굉장히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 작금의 답답함을 전 대통령의 입을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강연을 들은 후 주차장 인근의 식당에 들어갔다. (매점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듯 싶은 식당). 간단하게 라면을 먹으려고 앉아있는데 벽에 걸린 한 사진을 보았다. 내가 아직은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의 때를 벗지 못했거나 혹은 독재적 성격의 사진에 대한 반발심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서일까. 사진을 보는 순간 약간의 거부감이 일었다. 단순히 빨간 색이 사진에 배치되었음때문은 아니다. 사진의 구성이나 배치가 희한하게 독재자를 띄우려는 사진과 같은 성격이 강하게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편안하면서도 강한 느낌이 나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숱하게 봐왔는데 노사모 측에서 왜 저렇게 구성했는지 모를 일이다.

도리어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친근한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를 친근하게 그린 캐릭터나 우측에 걸린 노란색 바탕의 커다란 사진과 같은 유형을 걸어놓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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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드디어 체포전담조 '경찰관 기동대'가 창설식을 가졌다. '경찰관 기동대'를 검색해서 찾아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경찰관 기동대는 대한민국의 경찰관 부대이다. 일명 "백골단"으로 불리며 경찰청 경비국 경비과 소속이다.

대학때 이 '백골단'이라는 말은 '구사대'와 더불어 국민과 노동자의 적으로 불리웠다. 진압 방식이 무식(?)했고, 오로지 상대에 대해 적의감을 가진 채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측은 이번 '경찰관 기동대'에 대해 "이번 체포 전담반은 백골단과는 하는 일도 다르고 전혀 다른 느낌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전 촛불집회에서 경찰이 진압하는 방식을 보면 그 이상의 무식함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사진 속에서 보이는 저 모습이 정부가 제대로 국민을 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촛불을 든 국민이 아닌, '진짜' 범죄자에게만 보여주길 바랄 뿐이다. (메신저를 통해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했더니 나온 말이 "흐 순진하군. 1996년에 없어진 백골단을 잊었단 말이냐'라는 반응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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